김빛내리 IBS RNA 연구단 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이 miRNA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 다이서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밝혔다. /IBS

국내 연구진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마이크로 리보핵산(miRNA)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밝혔다. miRNA는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어 암, 당뇨병은 물론 유전병까지 관리할 수 있는 RNA치료제의 후보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그간 생성 과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치료제 개발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miRNA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밝힌 이번 연구를 계기로 RNA 치료제 개발 속도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은 23일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miRNA의 생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 ‘다이서’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RNA가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해 질병을 치료하는 원리.

◇항체치료제의 단점 극복할 RNA치료제

생명체가 가진 유전 정보는 디옥시리보핵산(DNA)에 저장돼, RNA를 거쳐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RNA에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mRNA뿐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마이크로RNA(miRNA)가 대표적이다.

miRNA는 염기 22쌍으로 이뤄진 작은 RNA 조각으로, 사람에게는 수백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의 miRNA는 여러 종류의 유전자에 작용할 수 있어, 사실상 2만~2만5000개에 달하는 사람의 모든 유전자가 miRNA에 의해 조절되는 셈이다.

miRNA가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방식은 ‘RNA간섭(RNAi)’이라고 불린다. miRNA가 mRNA를 분해해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기능을 막는 항체치료제와 비슷한 원리인 만큼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RNA는 단백질보다 합성이 간단하고 조작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한번 투약하는데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드는 항체치료제의 가격 문제를 해결하거나 치료방법이 마땅치 않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국 제약회사가 개발한 ‘파티시란’을 비롯해 현재 4종의 RNA간섭 치료제를 승인했다. 파티시란은 유전자 변형으로 비정상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축적돼 신경 손상을 일으키는 TTR아밀로이드증의 유일한 치료제다. 시장조사업체 더인사이트파트너스에 따르면 RNA 간섭 치료제 시장은 2019년 6억2000만달러(약 8100억원)에서 2027년 12억1000만달러로 2배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김빛내리 IBS RNA연구단 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이 마이크로RNA의 생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이서 단백질의 3D 구조를 밝혔다. 단백질의 3D 구조는 기능과 관련이 깊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구조를 변형해 기능을 강화한 재조합 단백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IBS

◇20년 풀리지 않았던 마이크로RNA 생성 원리 찾았다

RNA치료제가 차세대 의약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상용화를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아직 여럿 남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miRNA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기능이 조절되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miRNA의 전구체는 두 차례 잘리면서 miRNA가 되는데, 이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는 RNA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IBS 연구진은 miRNA에서 다이서에 의해 잘리는 염기서열을 찾기 위해 각기 다른 염기서열을 가진 전구체를 100만여개 만들었다. 그리고 다이서에 의해 잘린 전구체의 염기서열 특징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다이서에 의해 잘린 전구체의 한 쪽에는 시토신(C), 구아닌·아데닌(GA)이, 다른 쪽에는 구아닌(G), 우라실·시토신(UC)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단장은 “다이서가 자를 수 있는 이 염기 서열에 ‘짐(GY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miRNA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당 염기서열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이서의 3차원(3D) 구조도 밝혀졌다. 다이서는 약 20년 전에 발견돼 대략적인 구조는 이미 밝혀졌지만, miRNA가 결합하거나 절단하는 부위처럼 세부적인 구조와 기능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이서가 miRNA의 전구체를 자르는 방식을 관측하는 데도 성공했다. 다이서에 있는 miRNA 결합 부위가 miRNA를 단단히 고정한 이후에 마치 도끼로 내려 찍듯이 절단 부위가 잘라내는 방식이다. 단백질의 구조는 기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번 연구에서 다이서의 구조를 밝히면서 기능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 왼쪽부터 김빛내리 IBS 단장, 이영윤 IBS 연구원, 김해동 IBS 연구원, 노성훈 서울대 교수, 이한솔 서울대 연구원. /IBS

노성훈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다이서의 기본 구조를 알게 되면서, 일부 구조를 바꿔 기능을 강화하거나 추가하는 재조합 단백질 연구도 가능하게 됐다”며 “가령 지금은 22개 염기쌍을 가진 miRNA만 자를 수 있지만, 다양한 길이의 miRNA를 자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IBS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RNA치료제 개발은 물론 유전자 이상으로 나타나는 질병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단장은 “이번 연구 성과는 십수년 동안 꾸준히 축적해온 miRNA에 대한 연구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며 “앞으로 유전자 치료를 위한 RNA 플랫폼 개발 연구로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담은 논문 2편은 과학적 성과를 높이 인정받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22일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