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꼬리를 가진 참나무 합판 파종 로봇이 땅에 깊이 박히고, 아래 쪽에 넣어둔 씨앗이 싹튼 모습이다./미 카네기 멜론대

미국 카네기대의 리닝 야오 교수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자연을 모방한 목재 파종(播種) 로봇을 발표했다. 습도에 따라 나사 구조가 스스로 감기고 풀리길 반복하면서 끝에 달린 씨앗을 땅속 깊이 심는 원리이다. 기계나 전자 장치 없이 천연 소재로만 만들어 삼림 복원에 큰 도움을 줄 친환경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자들이 식물의 이동 전략을 모방하고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씨앗을 멀리, 안전하게 퍼뜨리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진화시켰다. 국화쥐손이가 씨앗이 스스로 땅에 파고드는 능력을 모방한 파종 로봇이 나왔고, 하늘을 나는 민들레와 단풍나무 씨앗을 모방한 공중 센서도 잇따라 개발됐다.

씨앗 파종하는 참나무 로봇./미 카네기 멜론대

◇나사 모양 씨앗 모방한 파종 로봇

대형 산불이 일어나 산이 황폐해지면 헬리콥터로 씨앗을 뿌려 삼림을 복원한다. 하지만 씨앗이 제대로 땅에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카네기대 연구진은 국화쥐손이의 씨앗을 모방해 삼림 복원을 도울 파종 로봇을 개발했다. 이 식물의 씨앗은 기다란 줄기를 꼬리 하나가 나선형으로 감고 있는 형태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습도에 따라 꼬리가 나선형으로 감기고 풀리기를 반복한다. 이에 따라 씨앗이 나사처럼 땅을 파고들 수 있다.

국화쥐손이는 이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에서 발아 성공률은 0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낮다. 연구진은 국화쥐손이 씨앗 구조를 한 단계 발전시킨 파종 로봇을 개발했다. 드론으로 파종 로봇을 야외에 살포한 결과 발아 성공률이 80%까지 나왔다. 자연을 모방하면서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파종 로봇은 참나무 합판으로 만들었다. 국화쥐손이 씨앗처럼 줄기 맨 아래에 씨앗이 있고 꼬리들이 줄기를 나선형으로 감싼 형태다. 연구진은 꼬리 숫자를 3개로 늘려 회전 능력을 높였다. 덕분에 로봇의 줄기가 똑바로 선 채로 착지해 아래쪽에 달린 씨앗이 땅에 박힐 가능성을 높였다.

그래픽=손민균

무엇보다 꼬리를 이루는 합판 소재의 안팎 구조를 달리해 습도에 따라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속도가 다르게 했다. 비가 오면 꼬리의 안쪽이 더 빨리 팽창했다. 그 결과 감겨있던 꼬리가 풀리면서 나사처럼 씨앗이 땅으로 파고들었다. 건조해지면 반대로 안쪽이 더 빨리 수축하면서 풀렸던 꼬리가 다시 감겼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로봇이 땅으로 파고들었다.

연구진은 파종 로봇이 씨앗과 함께 비료나 식물과 공생하는 곰팡이도 땅으로 전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천연 살충제가 될 선충도 같은 방법으로 전달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술 서비스 기업인 액센추어 랩의 안드레아 다니엘레스쿠 부소장은 “환경을 감시할 센서나 지열발전용 장치도 같은 방법으로 살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논문에는 액센추어 랩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시러큐스대, 중국 저장대 연구진도 참여했다.

물론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나오미 나카야마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지속가능한 혁신의 훌륭한 사례”라면서도 “상용화하려면 지금 같은 수작업 대신 대량 생산 공정으로 바꿔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 개의 꼬리를 가진 참나무 파종 로봇이 땅에 꽂히고 9일이 경과한 모습. 습도에 따라 코일이 감기고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씨앗이 있는 부분이 더 깊숙이 땅에 박혀 발아에 도움을 줬다./미 카네기 멜론대

◇단풍나무, 민들레 모방한 센서도

식물은 땅에 뿌리박고 있어도 단풍나무처럼 날개를 달아 씨앗을 수㎞까지 퍼뜨릴 수 있다. 한미(韓美) 연구진이 식물의 지혜를 모방한 전자 소자를 개발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존 로저스 교수와 숭실대 김봉훈 교수 공동연구진은 단풍 씨앗을 본뜬 초소형 센서 소자를 개발해 지난 2021년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단풍 씨앗은 날개처럼 생긴 얇은 막이 있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질 수 있다. 연구진은 잘 휘는 플라스틱으로 단풍 씨앗의 날개 구조를 모방했다.

연구진은 단풍 씨앗을 모방해 동력이 필요 없는 초소형 대기 감시 센서를 만들었다. 날개 안쪽에는 제어 회로와 센서, 코일 등을 넣었다. 코넬대의 패럴 헬블링 교수는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장비는 사물 인터넷에 기반해 환경 감시와 통신 중계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단풍 씨앗 모방한 초소형 센서./조선DB

비행 능력으로는 민들레 씨앗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네이처에 민들레가 바람을 이용해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으로 센서를 운반하는 장치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민들레 씨앗은 기다란 줄기 밑에 씨가 있고 위로는 솜털이 사방으로 난 형태이다. 2018년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진은 공기가 솜털 사이를 빠져 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압력이 낮아지면서 아래쪽의 민들레 씨앗을 위로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빗살 모양의 원형 구조로 민들레 씨앗의 솜털 구조를 모방했다.

센서 시스템은 민들레 씨앗보다 30배 무겁지만, 드론에서 발생한 바람으로 최대 100m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센서는 태양전지로 전원을 얻으며 최대 60m 떨어진 곳에서 센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드론으로 센서 장치 수천개를 바람에 실어 살포하면 1000개의 센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씨앗을 모방한 연구가 신기술로 싹이 틀 날이 머지 않았다.

민들레 씨앗(왼쪽)을 모방한 센서 장치(오른쪽). 민들레는 솜털 덕분에 씨앗을 위로 떠오르게 한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원형 빗살 구조로 이를 모방해 센서를 공중으로 전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미 워싱턴대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656-3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1-03847-y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1-043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