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밤에 잠을 잔다. 토끼풀은 낮에는 잎을 벌리고 있다가 밤이면 잎맥을 중심으로 마주 접는다. 식물은 언제부터 이런 행동을 했을까. 과학자들이 벌레 먹은 나뭇잎 화석에서 답을 찾았다.
중국 윈난대의 주오 펭 교수 연구진은 지난 16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오올로지(Current Biology)’에 “2억5000만년 전 화석을 통해 고생대에도 식물이 밤마다 잎을 접는 수면운동(睡眠運動, nyctinasty)을 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좌우로 벌레 구멍 난 식물 화석 찾아
식물의 수면운동은 토끼풀과 같은 콩과(科) 식물인 미모사나 자귀나무, 난초나무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화석을 통해 기원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논문 공동 저자인 스웨덴 자연사박물관의 스티븐 맥러플린 교수는 이날 학술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전에도 잎이 접혀 있는 화석들이 발견됐지만 수면운동의 결과인지, 아니면 생전에 시든 상태였거나 죽고 나서 휘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우연히 다른 방법으로 화석에 있는 잎이 수면운동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013년 펭 교수는 오늘날 식물의 잎에서 좌우 대칭으로 구멍이 난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모습은 수면운동을 하는 콩과 식물에 흔하게 나타났다. 식물이 밤에 수면운동으로 잎을 접었을 때 벌레가 갉아먹어 잎의 좌우로 구멍이 난 것이다.
연구진은 3억만년 전에서 2억5000만년 전 사이 고생대 마지막인 페름기 지층에서 기간토프테리드(gigantopterids) 속(屬)의 멸종 식물 화석을 연구했다. 이 화석에는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이 자주 나타났기 때문이다. 잎도 넓어 벌레 먹은 흔적을 찾기도 쉬웠다.
마침내 2016년 처음으로 벌레 먹은 흔적이 좌우 대칭으로 나 있는 기간토프테리드 화석을 발견했다. 2년 뒤 다른 종의 기간토프테리드 화석에서도 좌우 대칭의 벌레 구멍을 찾았다. 두 화석은 중국 남서부의 2억5900만년 전에서 2억5200만년 전 사이 지층에서 나왔다. 고생대에도 식물은 밤마다 수면운동을 한 것이다.
◇진화론 정립한 다윈도 수면운동 연구
수면운동은 19세기부터 연구됐지만 기원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화이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은 1882년 저서 ‘식물의 운동능력(The Power of Movement in Plants)’에서 콩과 식물에서 잎을 접는 수면운동이 나타난다고 기록했다.
콩과 식물은 근육 역할을 하는 엽침세포(pulvinus cell)로 잎을 접는다. 물이 잎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면서 수축과 팽창을 하고 이로 인해 잎이 말리고 접힌다. 하지만 화석에는 엽침세포가 보존되지 않아 수면운동의 기원을 찾기 어려웠다.
특히 이번 결과는 수면운동이 서로 다른 식물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오늘날 수면운동을 하는 식물은 모두 꽃이 피는 속씨식물이다. 하지만 이번에 수면운동을 확인한 기간토프테리드는 소나무나 은행나무 같은 겉씨식물이다.
맥러플린 교수는 “지구 역사에서 수면운동은 다양한 식물 집단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며 “수면운동은 식물에게 생태적 장점이었음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동식물 화석에서 구조뿐 아니라 행동의 특성도 유추할 수 있음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점에서 앞으로 화석이나 오늘날 식물에서 동물과의 상호작용을 자세히 관찰하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고대 생명체의 생물학적 특성을 해석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펭 교수는 “이번에 수면운동의 진화사가 2억5000만년 전 이상 고생대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다른 식물 계통에서도 같은 행동이 있었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2.1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