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바다사자 630마리가 조류인플루엔자로 집단 폐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 미국에 이어 남미에서도 포유류 감염 사례가 나오자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종간(種間) 장벽을 뛰어넘어 포유류 간에 전염되는 형태로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아르헨티나 국립코마후에대의 세르지오 람베르투치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페루 해안에서 집단폐사한 물개과(科) 동물인 남아메리카바다사자(학명 Otaria flavescens) 630마리와 남아메리카물개(Arctocephalus australis) 4마리는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바다사자 사체 6구를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모두 조류인플루엔자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유전자 검사에서는 고병원성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는 남미에서 야생동물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집단 폐사한 첫 사례이자, 바다사자의 첫 집단 폐사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는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 단백질 종류로 분류한다. 헤마글루티닌은 숙주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가 되며, 뉴라미니디아제는 증식 후 숙주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한다. 닭이나 오리, 철새에 조류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고병원성 H5N1은 HA 5형, NA 1형이라는 뜻이다. 2021년 10월 이후 전 세계에서 조류 1500만 마리가 고병원성 H5N1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죽었다.
연구진은 바다사자와 물개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바다새를 먹었거나 배설물을 접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바다사자 사이에 전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포유류에 적응해 페루의 바다사자 사이에 전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전염 경로를 시급히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폐사한 동물들은 최대 100마리까지 모여 있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해 바다사자가 동료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에 적응하는 형태로 유전자에 변화가 생겼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이번 집단 폐사 사례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조류에서 포유류로 넘어온 최신 사례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전 세계에서 포유류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사례가 119건 발생했다.
스페인 농장의 밍크와 카스피해의 물개에서 집단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영국에서는 수달과 여우 9마리가 고병원성 H5N1형 양성 반응을 보였으며, 지난달 미국에서는 병에 걸려 안락사시킨 회색곰 3마리에서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과학자들은 워낙 많은 새가 조류인플루엔자가 감염되다 보니 포유류와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진 결과라고 보고 있지만, 포유류 간 전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영국 레딩대의 바이러스학자인 이안 존스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지 인터뷰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새 워낙 많다 보니 그 중 바다로 떨어져 포유류 먹이가 된 바다새도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바이러스가 워낙 많이 퍼져 있고 포유류 사이에 전염될 수 있는 유전적 변화도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bioRxiv, DOI: https://doi.org/10.1101/2023.02.08.527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