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동물들이 모두 경주에서 이겼다고 앨리스가 갖고 있던 사탕을 하나씩 상으로 줬다. 그러자 동물들은 앨리스도 사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앨리스의 주머니에는 사탕은 없고 골무만 한 개 남았다. 새는 앨리스에게 “이 품격있는 골무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고 동물들은 환호했다.
1865년 출간된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커다란 부리에 짧은 날개를 한 새가 앨리스에게 골무를 건네는 모습의 삽화를 실었다. 바로 도도새(학명 Raphus cucullatus)이다. 인도양 모리셔스섬에 살던 도도새는 유럽에 알려진 지 100년도 안 돼 1662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한 탓에 사람과 가축에 마구잡이로 희생된 것이다.
‘인간에 의한 멸종’의 상징처럼 쓰이고 있는 도도새가 다시 앨리스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 바이오기업인 ‘콜로설 바이오사이언스(Colossal Biosciences)’는 지난달 31일 도도새를 과학기술의 힘으로 되살리는 ‘탈멸종(de-extinct)’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2021년 세계적인 유전학자인 조지 처치 하버드대 교수가 설립한 이 회사는 지금까지 2억2500만 달러(한화 2858억원)를 투자받아 매머드와 태즈메이니아 주머니늑대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세계적인 투자사뿐 아니라 힐튼 호텔 창업자의 증손녀인 패리스 힐튼 같은 유명인들도 콜로설의 멸종 동물 복원에 투자했다.
◇유전자 편집과 체세포 복제 기술 총동원
콜로설의 계획은 이렇다. 도도새의 먼 친척뻘인 니코바르 비둘기에서 장차 정자와 난자로 자랄 줄기세포(원시생식세포)를 확립한다. 다음에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자르고 붙이는 효소 복합체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줄기세포에서 비둘기 유전자를 도도새 고유 유전자로 바꾼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브라질과 칠레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진화’에 닭의 수정란에서 ‘인도 고슴도치’라는 별명을 가진 유전자를 억제하자 닭의 종아리뼈가 공룡처럼 길게 자랐다고 발표했다. 콜로설은 도도새 유전자를 가진 비둘기 줄기세포를 배아에 넣고 대리모에 착상시켜 도도새를 닮은 니코바르 비둘기를 탄생시키겠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콜로설의 계획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10일 콜로설의 도도새 복원 계획에 대해 “유전자 편집과 줄기세포 생물학, 축산학 분야의 엄청난 발전에 달려있어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고 전했다. 미국 웰스 칼리지대의 토머스 옌센 교수는 “그런 계획에 투자를 받을 수 있다니 놀랍다”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가까운 장래에 실현 가능한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도새 복원은 일단 첫 단계부터 쉽지 않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의 한재용 교수는 네이처에 “니코바르 비둘기의 유전자를 편집하려면 먼저 실험실에서 원시생식세포를 확립할 조건부터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닭에서는 성공했지만 다른 조류의 원시생식세포에 대한 배양 조건을 확립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둘기에 도도새 유전자를 넣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베스 샤피로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2016년 도도새와 니코바르 비둘기가 3000만년에서 5000만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진화했다고 발표했다. 그 사이 두 새의 유전자는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콜로설의 자문 과학자인 샤피로 교수는 최근 도도새의 유전자까지 해독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오래된 표본에서 얻은 유전자는 손상된 부분이 많아 두 조류의 유전자 차이를 모두 밝히기는 어렵다고 본다. 지난해 덴마크 과학자들은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멸종한 쥐와 친척뻘 쥐의 유전자를 비교해 공통 조상에서 분리된 이후 생긴 유전적 변화가 대부분 오래된 표본에서 누락된 부분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설사 두 새의 유전적 차이를 밝힌다 해도 도도새 고유의 수천 가지 유전자를 비둘기의 줄기세포에 도입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또 도도새만큼 커다란 대리모를 구하기도 어렵다.
◇매머드 털 가진 코끼리 복제도 추진
콜로설의 벤 람 대표는 이런 지적에 대해 “난관들을 잘 알고 있지만 해결 못 할 일도 아니다”면서 “도도새 탈멸종 연구는 장차 다른 조류의 보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콜로설의 공동 창업자인 조지 처치 교수는 이종(異種) 유전자 편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능력을 보였다. 그는 이제네시스(eGenesis)라는 회사를 세워 돼지의 유전자 13가지를 교정하고 장기를 원숭이에게 이식한 바 있다. 이런 방식으로 돼지 장기를 인간화해서 사람에게 넣겠다는 것이다.
콜로설은 빙하기에 살다가 4000년 전 멸종한 매머드를 복원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이미 시베리아의 얼음 속에 보존된 매머드 사체에서 DNA가 담긴 세포도 추출했다. 처치 교수는 매머드의 유전자를 오늘날 코끼리에 이식해 10년 내 추위에 잘 견디는 시베리아 맞춤형 코끼리를 탄생시킬 계획이다. 콜로설은 그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 코끼리 유전자를 해독하고 줄기세포도 확립했다고 밝혔다.
호주에서 1936년 마지막 개체가 죽은 태즈메이니아 주머니늑대도 복원 대상이다. 늑대라고 하지만 캥거루처럼 새끼가 어미 보육낭에서 자라는 유대류이다. 몸에 줄무늬가 있다고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라고 한다. 콜로설은 태즈메이니아 주머니늑대 복원을 위해 같은 유대류의 줄기세포를 확립했다고 밝혔다.
◇”현재 생태계 보존이 더 가치 있는 일”
과학자들은 콜로설의 계획이 단기간에 달성되기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멸종 동물을 복제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리셔스 야생동물 재단의 보존 책임자인 비카시 타타야는 네이처에 “17세기 도도새의 서식지 대부분이 사라졌다”면서 “그렇게 많은 돈이 있다면 모리셔스의 생태계를 보전하고 현재 생물 종들이 멸종하지 않도록 하는 데 쓰는 게 더 낫지 않은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콜로설과 반대로 멸종 동물 대신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받았다. 러시아의 지구물리학자인 세르게이 지모프와 아들 니키타 지모프 부자(父子)는 1996년부터 마지막 빙하기인 플라이스토세(世)의 생태계를 시베리아에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빙하기에 살던 대형 초식동물을 시베리아에 들여와 영구 동토층(凍土層)이 녹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동토층이 녹으면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 방출돼 온난화를 가속할 수 있다.
지모프 부자가 그리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시베리아의 눈은 그 아래 동토층을 한기(寒氣)에서 보호한다. 대형 초식동물들이 살면 풀을 찾아 눈을 파헤치고 다져 그런 보온 효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플라이스토세 공원에서 초식동물이 풀을 뜯은 곳은 눈이 사라져 다른 곳보다 지표 온도가 2도 더 낮았다고 한다. 과연 도도새는 누가 더 잘한다고 골무 상을 줄까.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3-00379-5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2.02.027
BMC Ecology and Evolution, DOI: https://doi.org/10.1186/s12862-016-0800-3
Evolution, DOI: https://doi.org/10.1111/evo.12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