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은 과학계의 ‘미스터 쓴소리’다. 서울대 공대 학장과 연구부총장을 지내고 기계항공공학부 명예교수로 있는 이 부의장은 2020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작년 9월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을 맡고 나서는 윤석열 정부에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겠다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과기자문회의에 5년 동안 딱 세 차례만 온 점을 거론하며 “과기자문회의 성공 여부는 대통령의 출석률에 달렸다”고 꼬집기도 했다. 과기자문회의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다.
이 부의장의 쓴소리가 통하는 걸까.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과학기술 행보에 열심이다. 작년 10월 과기자문회의 첫 전원회의를 윤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고,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 순방 때는 세계적인 양자 석학들과 윤 대통령이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젊은 과학기술 지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고, 이달 들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금오공대를 방문해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다짐했다.
이 부의장은 윤 대통령의 과학기술 행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과기자문회의 사무실에서 이 부의장을 만나 과학기술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은 박근태 사이언스조선부장이 진행했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부터 다누리의 성공까지. 작년부터 과학기술계에 좋은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과학기술에 본격적으로 투자한 게 30년 정도됐다. 이 정도는 축적이 돼야 성과가 난다. 그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했던 게 슬슬 넘치는 해였다고 생각한다. 노벨상도 슬슬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계속 좋은 일들이 나올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정책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축적된 것들이 있었다.
“정권에 상관없이 과학기술 정책은 거의 일관되게 이어진 부분이 있다. 프레임은 그대로고 캐치프라이즈만 바뀐 거라고 본다. 녹색경제나 창조경제, 전 정부까지 결국 그 기저에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규모는 비슷하게 유지됐다.”
-윤석열 정부는 양자 기술과 우주경제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기술 정책의 캐치프라이즈는 어떻게 평가하나.
“윤 대통령과 대여섯 차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일관된 메시지가 있었다. 그 분은 최고의 가치를 자유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헤쳐나가야 할 게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길은 성장 사회를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신다. 경제가 축소되거나 정체되기 때문에 같은 파이를 놓고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성장을 일으키기 위한 길이 바로 과학기술이라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고 철학이다.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의 철학에 동의한다.”
-현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업에 기여하는 연구를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전 정부가 표방한 기초과학과 젊은 과학기술인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새 정부가 AI반도체나 양자, 우주를 강조하면서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나 인재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양자와 우주 같은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되면서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얼마 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금오공대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이 한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이 뭔지를 이야기하면서 고속도로 건설이나 중화학공업 육성이 아니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세운 걸 꼽았다. KIST를 세워서 과학 인재 풀을 만들고 과학 붐을 일으킨 게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윤 대통령이 평가하는 걸 보고 과학기술에 대해 이분이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았다.”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 중에서도 인력 양성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
“맞다. 인력 양성이 중요한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어렵다. 박 전 대통령 때는 KIST에 오면 보상을 3~5배씩 주고 아파트도 줬는데 이제는 불가능하다. 애국심에 호소할 수도 없다. 청년들을 과학기술 분야에 어떻게 끌어들일 지, 유인책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엔 처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대학을 보면 학문에 관계 없이 모든 교수의 월급이 똑같다. 이런 부분이 개선돼야 의대를 가는 학생들도 과학기술 분야로 유치할 수 있다. 기업과 대학이 함께 손을 잡고 공대 교수의 월급 일부를 기업이 주는 식으로 한다든가 금전적인 보상이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과기자문회의의 역할은 대통령과 과학을 잇는 소통창구다.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전문 인력 풀이 한정돼 있다. 국내 전문가 인력 풀이 한정돼 있다. 현재 하고 있는 건 국내 전문가 ‘게놈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실에서 ‘양자 암호’와 관련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2~3일 안에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바로 추천할 수 있도록 인력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와 함께 만들려고 한다. 인력을 추천할 때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더라도 적시에 필요한 인력을 추천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또 중요한 과학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를 정리해 대통령이 볼 수 있도록 이슈리포트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 주간 단위로 리포트를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크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기술계가 응답을 해야 한다.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고쳐야 한다. 그 기저에는 정량적인 성과 평가가 있다. 논문 몇 개, 특허 몇 개라는 식으로 평가하는 걸 바꿔야 한다. 정량적인 평가 대신 정성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논문 몇 편 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수한 업적 하나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아직은 관성이 있지만 연구계에서도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규제 측면에서는 개선할 부분이 없을까.
“제도 때문에 통계가 왜곡되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기술이전인데 세금이나 인식 때문에 기술이전이 아닌 경우가 많다. 기술이전 수입은 연구자 입장에선 근로소득으로 잡혀서 세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 때문에 기술이전 대신에 프로젝트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오너들 중에 대학이나 외부 연구소에서 기술을 이전받는 걸 자존심 문제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사와도 되는 기술을 그냥 프로젝트로 해결하는 경우다. 이런 식으로 통계가 왜곡되는 걸 정비만 해도 데이터가 몇 배는 높아질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기 위해 과기자문회의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
“전 정부가 출범할 때 자문회의와 심의회를 합쳤다. 대통령이 의장이 되면서 힘을 실어주는 의미였는데 정작 리더가 관심이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 전 정부에서 겪은 문제를 잘 알기 때문에 개선점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심의와 자문 역할을 분리하고, 민간위원을 더 늘리고, 기술 분야별로 다양화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다만 법률 개정 사안이라 시간은 좀 필요하다.”
-최근 일부 대학이 자연계열 진학 학생에게 적용해 온 수능 필수 영역 지정을 폐지했다. 미적분을 몰라도 자연계열에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리더로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적분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미적분을 배운다는 건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당연히 알아야 할 개념인데 입시 위주로 보니까 수능에 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왜곡이 된 거다. 고등학교의 목표가 대학입시가 아니라 사고력을 키우고 교양을 키워주는 걸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