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코로나바이러스의 면역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이 백신이나 감염을 통해 항체를 가지면 바이러스는 델타, 오미크론으로 변이를 거듭하며 빠져나갔다. 개미 사회도 인간처럼 방역 전쟁을 하고 있다. 개미가 집단 방역으로 곰팡이 감염을 막자, 곰팡이는 화학신호를 바꿔 감시망을 뚫었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방역 행동에서 전염병과 싸울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연구원(ISTA)의 실비아 크레머 박사 연구진은 지난 2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에 “개미의 사회적 면역(social immunity)에 대응해 곰팡이가 화학신호를 바꿔 자신을 위장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개미가 막으면 곰팡이가 뚫어
사회적 면역은 군집 전체에 병원체가 퍼지지 않도록 하는 집단 위생과 건강 관리를 의미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개미나 꿀벌이 병에 걸린 동료를 보살피거나 입으로 면역물질을 전달하는 행동을 포함한다.
크레머 박사 연구진은 아르헨티나 개미(학명 Linepithema humile)가 병원성 곰팡이를 이겨내는 사회적 면역 행동을 관찰했다. 채집개미는 밖에서 먹이를 찾다가 곰팡이에 감염된다. 곰팡이는 개미 몸 안으로 침투해 자란다. 보육개미들은 채집개미가 돌아오면 몸에 붙은 곰팡이 포자를 제거한다. 코로나 감염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구진은 개미의 사회적 면역에 대응해 곰팡이도 진화하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실험실에서 개미가 곰팡이에 감염되자 예상대로 동료가 곰팡이 포자를 없앴다. 그러자 곰팡이는 포자를 더 많이 만들어 대응했다. 놀랍게도 포자가 늘자 거꾸로 개미가 감염된 동료를 보살피는 행동이 줄어들었다.
크레머 박사는 포자가 늘어도 보살피는 개미에게 이전보다 감지가 안 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의료진이 중증 환자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중증인지 알아채지 못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의 토마스 슈미트 교수는 포자가 늘어도 곰팡이 세포막의 고유 성분인 에르고스테롤(ergosterol)이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원래 개미는 다른 동물의 에르고스테롤에는 반응하지 않고, 오직 곰팡이의 에르고스테롤에만 동료를 보살피는 행동을 보였다. 곰팡이는 화학신호를 바꿔 개미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신을 위장한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개미 같은 사회적 동물의 집단 면역 행동이 병원체의 진화를 촉발했음을 보여줬다. 이는 인간과 코로나바이러스의 면역 경쟁을 연상시킨다. 연구진은 “개미 사회가 곰팡이의 위장술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며 “아마도 개미는 이전보다 약한 화학신호에도 곰팡이를 감지할 수 있도록 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균 물질 나눠 소독하고 거리두기도 실천
개미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면역을 달성한다. 미국 농무부 산하 농업과학연구소(ARS)는 지난해 12월 ‘곤충생리학 저널’에 불개미가 독으로 사회적 면역 행동을 한다고 발표했다. 불개미는 산성용액인 개미산을 분비해 천적을 물리치고 먹잇감을 마비시킨다. 때로 동료에게도 개미산을 쏜다. 개미산의 항균 특성을 이용해 병원체 감염을 막는 것이다.
ARS 연구진은 불개미들이 동료의 입에 먹이를 전해주는 영양교환에서 개미산도 함께 전달하는 것을 확인했다. 덕분에 항균 물질이 소화기관까지 들어가 병원균을 없앨 수 있다. 여왕개미는 처음 알에서 깬 일개미에게 먼저 독성 항균 물질을 전해준다. 일개미는 다시 애벌레에게 전달하고 결국 군집 전체로 항균 물질이 퍼진다.
거리두기의 원조도 개미이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나탈리 스트뢰이마이트 교수는 2018년 사이언스지에 고동털개미(Lasius niger)가 병에 걸리면 건강한 동료와 접촉을 꺼리고 심지어 스스로 집을 떠나기도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개미 등에 일일이 자동인식 태그를 달고 채집개미와 보육개미, 여왕개미의 이동 경로를 분석했다. 채집개미에게 곰팡이를 감염시키자 동료들이 먹이를 나누는 행동을 중단하고 거리를 뒀다. 감염된 개미는 죽음에 이르자 스스로 다른 개미와 접촉하지 못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자가격리를 한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자연의 지혜에 주목
동물들의 거리두기 행동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스트뢰이마이트 교수는 지난 2021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감염병과 자연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논평 논문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일상화된 거리두기가 자연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행동”이라고 밝혔다.
흰개미 역시 독성 곰팡이에 감염되면 몸을 떨어 감염 신호를 보내 동료가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어린 개체도 마찬가지다. 꿀벌 애벌레가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신호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꿀벌들은 감염 신호를 낸 애벌레를 물어 벌집 밖으로 내다 버린다.
바닷가재의 일종인 카리브해 닭새우는 평소 산호초나 바위틈에서 모여 살지만, 동료가 병에 걸리면 바로 둥지를 나와 물속으로 도망간다. 닭새우는 병에 걸린 동료의 소변에서 이상 물질을 감지했다. 군집 생활을 하는 흡혈박쥐는 동료가 병에 걸리면 털 손질을 중단하지만 먹이는 계속 제공한다. 사람으로 치면 격리 치료를 하는 셈이다.
최근 코로나19에 이어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종간 장벽을 넘어 사람까지 퍼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연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참고자료
Nature Ecology & Evolution, DOI: https://doi.org/10.1038/s41559-023-01981-6
Journal of Insect Physiology, DOI: https://doi.org/10.1016/j.jinsphys.2022.104437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c8881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https://doi.org/10.1098/rspb.2020.1039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t4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