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찰한 초속 1000㎞ 이상의 은하 회전 속도에도 은하단이 해체되지 않으려면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질량이 400배 이상 커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암흑물질’이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훨씬 더 많이 우주에 있어야 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1933년 ‘머리털자리 은하단(COMA)’에서 발견한 특이한 현상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는 단어가 과학계에 처음 등장한 순간입니다.
벌써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암흑물질의 실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전히 많은 물리학자가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암흑물질은 무엇일까요. 실제로 우주에 있기는 할까요. 소중호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과 암흑물질의 정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암흑물질은 검은색이 아니다
암흑물질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색입니다. 암흑물질이라는 단어 때문에 암흑물질을 검은 색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건 잘못된 이해입니다. ‘암흑’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에 있다는 것을, ‘물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단서가 물질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암흑물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론으로 계산한 질량과 관측으로 계산한 질량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물질’입니다.
츠비키가 암흑물질이라는 개념을 만든 이유는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속한 은하들의 빠른 회전속도 때문입니다. 머리털자리 은하단은 1000개가 넘는 은하로 구성돼 있는데, 이렇게 많은 은하가 은하단에 모여 있으려면 밖으로 튕겨 나가는 은하를 붙잡을 수 있는 강한 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츠비키가 관측한 은하들의 회전 속도가 문제였습니다. 은하들이 워낙 빠르게 회전하고 있던 것입니다.
은하의 회전 속도가 빠르면 은하단에서 탈출하려는 힘이 강해집니다. 머리털자리 은하단을 관측해 계산한 중력만으로는 은하들을 붙잡아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츠비키는 물리학자들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물질, 암흑물질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질량을 가진 암흑물질이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있다면 머리털자리 은하단의 중력이 관측한 것보다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머리털자리 은하단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가 큰 폭발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빅뱅 이론에 따라서 현재 우주의 질량과 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는데, 이 또한 관측치와 다릅니다. 우주 전체 물질 중 우리가 볼 수 있는 물질은 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암흑물질이 27%, 암흑에너지가 6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암흑에너지는 암흑물질처럼 그 정체를 알 수 없으면서 질량은 없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이휘소 박사가 제안한 암흑물질 유력 후보
암흑물질은 현재 이론으로는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암흑물질을 찾지 못했습니다. 암흑물질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그 어떤 물질과도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려면 다른 물질이나 에너지와 상호작용을 해야 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여러 물질을 후보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 물질은 윔프(WIMP)와 액시온(AXION)이 꼽힙니다. 이 둘 모두 암흑물질과 마찬가지로 이론으로만 존재하고, 아직 그 실체를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가상의 물질입니다.
윔프는 한국의 물리학자인 고(故) 이휘소 박사가 1977년 처음으로 제안한 물질입니다. 질량이 약 100기가전자볼트(GeV)로 전자(0.511MeV)보다 무거운 편이고,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기본입자를 설명하는 표준 모형을 정립하기 전이던 당시에 우주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입자로 도입됐습니다.
윔프는 한때 물리학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이탈리아 그랑사소 입자물리학연구소의 다마(DAMA) 연구진이 1998년 윔프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연구진이 실험 결과를 재현하는 데 실패하고,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의 럭스-제플린 실험에서 질량 30GeV 이상까지 윔프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암흑물질로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액시온이 암흑물질 후보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액시온은 김진의 경희대 석좌교수가 제안한 물질입니다. 질량은 1~1000μeV로 가볍고 강한 자기장을 만나면 빛으로 바뀐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윔프가 암흑물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큰 돌이라면 액시온은 작은 조약돌인 셈입니다.
김 교수는 액시온을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했습니다. 반물질은 물질과 질량은 같지만, 전기적 성질이 반대라서 물질과 만나면 빛을 만나며 사라지게 됩니다. 액시온이 자기장을 만나 빛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만약 액시온이 발견된다면 암흑물질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우주가 만들어질 때 물질과 반물질의 비율이 달랐던 이유도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암흑물질이 존재하지 않고, 현재 우주의 중력과 에너지를 계산하는 이론이 틀렸다고 보는 물리학자들도 있습니다. 질량과 중력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뉴턴역학이 잘못됐다고 가정하고, 새로운 법칙인 수정뉴턴역학으로 이론과 관측의 차이를 없애려는 것입니다.
◇우주의 물리 현상, 하나의 공식으로 만들 열쇠
전 세계에서는 여전히 암흑물질을 찾으려는 연구가 여전히 한창입니다. 암흑물질이 아무리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관측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입자가속기에서 두 가지 입자를 빠르게 충돌시켜 쪼개진 입자의 질량이 처음보다 가벼워지면 우리가 관측하지 못하는 물질이 나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간접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암흑물질을 찾는 방법입니다.
직접 암흑물질이 다른 물질과 충돌하면서 나오는 신호를 측정할 수도 있습니다. 암흑물질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직접 충돌은 할 수 있습니다. 검출기를 설치하고,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와 충돌해 나오는 신호 중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신호를 내는 물질이 암흑물질입니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지난해 강원 정선에 준공한 예미랩에서 암흑물질을 찾는 방식입니다.
예미랩에서는 이르면 올해부터 윔프를 찾기 위한 ‘코사인-100 실험’을 할 예정입니다. 윔프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다마 연구팀의 실험과 같은 방식인 고순도 요오드화나트륨 결정으로 윔프의 존재 가능성을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목표입니다. 만약 코사인-100 실험에서도 윔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는 액시온만 남게 됩니다. 암흑물질의 탐색 범위를 줄여 더 정밀한 연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이렇게 암흑물질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우주의 모든 물리현상을 하나의 공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만물이론)’이라고 부릅니다. 1960년대 표준모형이 등장하며 물질에 특성을 부여하는 단 17개의 입자로 우주의 대부분 물리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여러 현상이 새롭게 관측되고 있습니다.
가령 중성미자는 표준모형에서 질량이 없는 물질로 등장했는데, 타우·뮤온·전자 등 세 가지 상태로 바뀔 수 있습니다. 최근에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등 표준모형에도 더 많은 입자를 도입해 확장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암흑물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초의 표준모형에는 없었던 비활성 중성미자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데, 비활성 중성미자를 암흑물질의 후보로 보는 물리학자도 있습니다.
물론 암흑물질을 찾는 데 성공하더라도 우리의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 실생활을 크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가령 인터넷이 여러 나라의 물리학자가 참여한 CERN의 연구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개발한 시스템에서 발전한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