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11시 31분. 수도권 주민들에게 낯선 재난 안전 문자 알림이 울렸다. 평소 재난 안전 문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보내는 코로나19 관련 안내, 환경부의 미세먼지 관련 안내 메시지가 주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날 재난 안전 문자를 보낸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였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오전 11시 31분과 오후 12시13분에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 인근에 미국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 위성 지구복사수지위성(ERBS)의 일부 잔해물이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수도권 주민들에게 바깥 출입을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인 오후 1시 4분쯤 과기정통부는 위성이 알래스카 인근 바다로 완전히 추락했다고 밝혔다. 한 시간 반에 걸친 긴박했던 추락 상황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정부가 위성과 우주 잔해물 추락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었던 위기 대응 매뉴얼의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우주위험 대응 매뉴얼이 처음 만들어진 건 2016년이지만, 실제로 한반도에 위성추락 잔해물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상황을 경험한 정부가 관련 매뉴얼을 보다 정교하게 개선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18일 정부와 우주 관련 기관 등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최근 우주위험 대응 매뉴얼 개정에 착수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2013년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면서 우주위험 대응 우주감시 시스템 구축에 나섰고 이후 우주위험대비 기본계획과 우주위험 대응 매뉴얼도 만들었다”며 “하지만 실제 상황을 겪어보니 매뉴얼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개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9일 수명을 다한 미국의 지구관측위성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한반도 인근 지역에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당 위성은 1984년에 발사된 무게 2450㎏짜리 지구관측위성으로 9일 오후 12시 20분에서 오후 1시 20분 사이에 한반도 인근에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과기정통부는 경계 경보를 발령하고 우주위험 대책본부를 소집하는 등 추락에 대비했지만 다행히 위성 추락물은 한반도를 지나 알라스카 지역에 추락했다.
과기정통부는 우주위험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진 후로 처음 맞이한 실제 상황에서 비교적 원활하게 대응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관련 부처와의 소통이나 협업 등이 일부 미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매뉴얼 개정에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손본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우주위험 대응에서는 여러 부처간 원활한 소통과 협의가 필수적”이라며 “야간이나 주말에 위성 잔해물이 추락할 수도 있는만큼 이런 때에는 어떻게 관련 부처 간에 원활하게 공동 대응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위성 추락물 같은 우주위험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도 매뉴얼 개정에 나서는 이유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지구궤도 상에 존재하는 인공우주물체는 2만6715개에 달한다. 이 중에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컨트롤(운영)하는 인공위성은 7270개에 불과하다. 2953개의 인공위성은 지난 9일 추락한 미국 위성처럼 운영이 종료된 상태고, 각종 잔해물(파편)도 1만6492개가 지구궤도를 돌고 있다.
지난해 지구에 추락한 인공우주물체는 2444개에 달했는데, 직전 6년 동안 떨어진 인공우주물체(2006개)를 합친 것보다 작년 한 해에 떨어진 게 더 많았다.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위성 수만 개를 지구궤도에 띄우겠다고 나서는 등 민간의 인공위성 발사가 급증하면서 우주쓰레기의 지구 추락 같은 우주위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매뉴얼 개정과 함께 관련 인프라 정비에도 나설 계획이다. 우주위험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매뉴얼 만큼이나 인프라 확충도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우주위험 대응 실무를 맡고 있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최은정 우주위험연구실장은 “기존 우주위험 대비 기본계획에도 우주 물체 감시를 위한 레이더 개발 사업 등이 언급돼 있었는데 이런 걸 더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며 “계획만 있고 예산 투입은 없었던 사업들에 실제 예산을 투입해서 우주위험물체를 감시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