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 치료제 상용화 임박…첫 치료제는?
유전자 편집해 고혈압 예방… MIT가 뽑은 10대 미래기술
‘유전자 가위’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 제목입니다. 만능 치료약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유전자 가위에 대한 기대가 큰 걸 알 수 있습니다. 의학과 바이오 분야만이 아닙니다. 농업에서도, 투자업에서도 유전자 가위는 언제나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용어로 쓰입니다.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용어지만, 정작 ‘유전자 가위’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조선비즈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는 유전자 가위가 정확히 어떤 뜻인지 임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학박사)과 함께 쉽게 풀어봤습니다.
◇왜 가위인가
유전자 가위는 최첨단 바이오공학 기술처럼 보이지만, 사실 세상에 나온 지 20년은 더 된 기술입니다. 세포의 유전자를 교정하는데 쓰이는 기술을 유전자 가위라고 부르는데, 1세대부터 3세대까지로 세대 구분을 합니다.
특정 염기를 잘라내는 데 활용하는 효소의 종류에 따라 1세대를 징크핑거 뉴클레이즈(ZEN·젠), 2세대를 탈렌(TALEN)이라고 부릅니다. 1세대와 2세대도 주목 받는 기술이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까지는 아닙니다. 유전자 가위가 지금의 지위에 올라선 건 3세대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이 등장하면서입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는 2012년 6월 2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공로로 다우드나 교수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장과 함께 2020년 노벨 화학상을 함께 수상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건 2020년이지만 처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노벨상은 다우드나 교수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크리스퍼가 앞선 유전자 가위 기술보다 주목받는 건 효율과 정교함이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퍼는 박테리아가 내부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면역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겁니다.
박테리아는 내부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 염기 일부를 잘라서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같은 DNA를 가진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효소 단백질을 이용해 잘라냅니다. 크리스퍼는 박테리아의 이런 면역 시스템을 DNA를 자를 때 이용하는 원리입니다.
실제 가위처럼 생긴 게 아니라 무언가를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유전자 가위’라는 이름이 붙은 거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가이드 RNA(리보핵산)와 캐스(Cas) 단백질로 구성되는데, 가이드 RNA가 잘라야 하는 부분을 붙잡아 두면 캐스 단백질이 여기에 결합하면서 해당 부위를 잘라내게 됩니다.
◇뭘 자르는 걸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자르는 대상은 ‘DNA’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가 자신의 고유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이걸 DNA라고 부릅니다. DNA는 염기는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티민(T)의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A와 T, C와 G가 항상 결합하는데, 이 염기의 배열 순서에 따라 유전정보에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바로 이런 염기서열을 정확하게 인식해 딱 자르는 겁니다. 염기서열을 자르고 이 자리에 다른 염기를 넣으면 유전정보가 달라지면서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작물 재배와 질병 치료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다우드나 교수는 손상된 간 단백질이 혈액에 쌓이면서 생기는 트레스레틴 아밀로이드증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샤르팡티에 소장도 난치성 빈혈 환자 치료법을 개발했습니다. 주로 병의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질병 치료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많이 쓰입니다. DNA 염기의 어떤 부분이 망가지면 어떤 병이 생긴다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치료 효과도 극대화된다는 겁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자를 바꾼 작물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일본 바이오기업 사나텍 시드가 수면을 유도하는 물질이 많이 들어간 방울토마토를 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실 차원에선 훨씬 다양한 작물들이 있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생산량을 늘린 쌀과 옥수수, 밀 같은 농작물이 있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광어의 근육량을 25% 증가시키는 실험이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유전자 변형과 유전자 편집은 다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작물을 개량하는 걸 유전자 편집 또는 유전자 교정이라고 부릅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기존의 유전자 변형 작물(GMO)과 유전자 편집 작물은 완전히 다르다며 GMO와 함께 묶이는 걸 경계합니다. 실제로 유럽 등에서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만든 농작물을 GMO 규제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을 논의 중입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작물은 GMO와 무엇이 다르다는 걸까요. 사과를 예로 들어볼게요. 사과의 크기를 키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GMO에서는 사과보다 큰 배의 유전자를 사과에 인위적으로 주입해서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씁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사과에 배의 유전자가 삽입될 가능성이 없겠죠. 이렇게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는 게 GMO입니다.
유전자 가위는 외래 유전자 대신 사과 자체의 유전자 일부 편집하는 방식을 씁니다. 사과의 크기를 결정하는 DNA를 절단해서 예전보다 크기가 큰 사과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GMO에 대한 반감이 큰 한국에선 유전자 가위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이 많지만,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작물을 GMO와 분리해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안전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표적되는 DNA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최근에는 DNA를 자르지 않고 염기를 바꾸기만 하는 기술도 나왔습니다. 유전자 가위가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원래 있던 DNA 염기서열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인 만큼 세포 입장에선 불필요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인 건 맞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죠.
이 때문에 표적 DNA를 억지로 잘라내는 대신 아예 다른 염기로 치환할 수 있는 기술이 최근에는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서울대 의대 배상수 교수가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배 교수는 표적 DNA의 염기를 다른 염기로 치환할 수 있는 염기교정 유전자가위 기술의 정확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배 교수 외에도 김진수 전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김형범 연세대 의대 교수도 유전자 가위 분야의 석학입니다. 한국의 유전자 가위 기술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는데 큰 역할을 한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