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되거나 노화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기를 치료하는 첨단재생의료 기술에서 최근 3D프린팅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웨이크포레스트 재생의학 연구소에서 개발한 3D프린팅 인공장기의 모습. /Wake Forest Institute for Regenerative medicine

미국 타임지는 지난 2015년 사람의 기대 수명을 142년으로 제시했다. 항노화 약인 라파마이신이 동물의 수명을 1.7배 늘리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기대 수명을 142년까지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의 기대 수명은 80대에 멈춰있다.

사람의 기대 수명이 늘어나지 못하는 건 인체 장기의 수명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뼈는 35세부터 노화가 시작하고, 간은 40년, 심장은 50년, 뇌는 70년 정도가 지나면 노화가 시작된다. 장기가 늙으면서 생기는 각종 질병이 사람의 기대 수명을 낮추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첨단재생의료 분야에선 장기를 어떻게 하면 재생하고 대체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다.

◇첨단재생의료에 기업과 정부 모두 주목

첨단재생의료는 손상되거나 노화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세포, 조직, 장기를 대체하거나 재생시켜서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기술이다. 이전에는 손상된 장기를 고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 받아야만 했다면, 최근에는 세포치료·유전자치료·이종장기 기술이 발달해 장기 이식을 대체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첨단재생의료 기술은 앨러간, 화이자, 암젠 등 글로벌 제약사는 물론 국내외 여러 기업이 주목하고 있다. 시장조사기업 리서치앤마켓은 이달 13일 첨단재생의료 시장이 지난해 122억달러(약15조400억원)에서 2027년 406억달러로 매년 27.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도 2020년부터 첨단재생의료·바이오의약품법을 시행하면서 첨단재생의료 기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까지 총 393억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자하고, 첨단재생의료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실시기관을 총 56곳 지정했다. 올해에는 첨단재생의료 실시기관을 의원급까지 확대해 임상시험을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대 의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연구원이 이종 장기 이식용 미니 돼지를 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돼지 췌도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하려면 앞서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 8마리에 이식해 5마리가 6개월 이상 생존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사업단은 이 조건을 이미 충족하고 올해부터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대

◇국내 이종장기 이식 실험, 올해 시작한다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장기 이식은 올해 본격적으로 시도될 예정이다.

이종이식 전문기업 제넨바이오는 지난해 12월 식약처에서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의 허가를 받았고, 올해부터 참가자 모집과 이식 수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췌도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조직으로, 췌도에 문제가 생겨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는 질병을 제1형 당뇨병이라고 부른다. 췌도이식은 인슐린 투여로 혈당 조절이 어려운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근본적 치료법으로 기대를 모은다.

제넨바이오는 2020년부터 이종췌도 이식 임상시험을 준비했지만, 그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아 승인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임상시험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IXA)의 가이드라인을 지킨 최초의 사람 대상 이종 췌도이식이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을 이끈 박정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췌도 세포는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적은 부위”라며 “이종장기 이식 실험에서 가장 큰 우려인 안전성에 대한 문제는 충분히 해결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메릴랜드대병원 연구진은 지난해 1월 사람에게 돼지의 심장을 이식했다. 돼지의 유전자를 4개 없애고, 사람의 유전자는 6개 넣어 면역 거부 반응을 막았다. 돼지 심장을 받은 환자는 돼지 세포에 있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활성화되며 두달 만에 숨졌지만, 과학계에서는 이종장기 이식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실험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첨단재생의료기업 3D바이오테라퓨틱스는 지난해 3D 프린팅 기술로 귀를 만들어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3DBio Therapeutics

◇프린터로 장기도 만든다

3D 프린팅을 이용한 재생의료도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3D 바이오프린팅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환자의 세포를 채취해 몸 밖에서 장기를 만들고, 이를 이식하는 방식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다양한 기관을 만드는 세포의 특성을 이용해 3차원 환경에서 줄기세포를 키워 필요한 장기를 만들어 환자에게 이식하거나 장기의 회복을 돕는다. 환자의 세포를 이용하는 만큼 이종장기 이식보다 안전하다.

지난해 미국 3D바이오테라퓨틱스는 3D 프린팅 기술로 자가 세포로 만든 귀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3D바이오테라퓨틱스는 올해 2월까지 총 11명에게 임상 시험을 마친 후 2028년까지 안전성을 확인할 예정이다. 다만 3D 프린팅 기술로 복잡한 장기를 만드는 것은 당분간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애덤 파인버그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귀는 복잡한 기관이라기보다는 단순한 구조에 가깝다”며 “3D 프린팅을 이용해 간이나 신장·심장·폐 같은 장기를 몸 밖에서 만드는 것은 아직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첨단재생의료기업 로킷 헬스케어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기가 스스로 재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환자의 줄기세포를 채취해 몸 밖에서 장기를 만드는 대신, 재생이 필요한 장기에 패치를 붙이는 방식이다. 패치에는 줄기세포가 필요한 장기로 바뀔 수 있는 미세 환경이 구현돼 있어 외부에서 장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이 방식으로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긴 신부전 환자의 장기를 재생하는 치료법은 2021년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를 받았다.

류동진 인하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회복이 필요한 장기에 붙인 패치가 직접 장기로 재생되는 것이 아닌, 미세 환경에 의해 줄기세포가 뿜는 물질이 장기를 회복하는 원리”라며 “재생의료 기술을 이용할 경우 수술은 최소화하면서 장기의 노화나 손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