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건축자재업체인 프로메테우스 머티리얼스(Prometheus Materials)는 내년 초부터 블록 생산을 시작한다. 겉모습은 누구나 아는 블록처럼 보이지만, 안은 전혀 다르다. 광합성 세균이 합성한 시멘트로 만든 바이오 블록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 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 시멘트가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인 바이오 블록과 바닥재, 타일이 속속 개발됐다. 균열이 생긴 건물을 보수하고 해안 침식을 막는 데에도 활용된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시멘트 보급이 늘면 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고 기대한다.
◇광합성 통해 시멘트 벽돌 제조
건설산업은 최근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돼 비난을 받고 있다. 주재료인 시멘트를 만들 때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8%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멘트는 석회석을 섭씨 1500도 이상 고온으로 구워 만든다. 이때 석회석에서 질량의 44%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가 밖으로 나온다. 고온을 유지할 열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프로메테우스는 석회석을 굽지 않고 광합성 미생물을 배양해 시멘트를 만들었다. 광합성은 엽록소가 빛에너지를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를 당분으로 바꾸는 것이다.
먼저 시아노박테리아라는 광합성 세균에게 칼슘 이온이 녹아있는 영무기 영양액을 주면서 빛을 가했다. 이산화탄소도 공급했다. 그러자 세균은 6시간마다 두 배로 증식하면서 석회 성분인 탄산칼슘 결정을 만들었다. 산호나 조가비가 단단해지는 원리인 생물 광물화 과정을 모방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세균이 만든 탄산칼슘에 모래를 섞어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젤리 성분인 하이드로겔도 추가해 모래와 더 잘 결합하도록 했다. 이것을 틀에 넣고 10초간 압축해 건물 벽체를 만드는 블록을 만들었다. 기존 블록은 단단하게 굳는 데 28일 걸리지만, 바이오 블록은 8일이면 충분하다고 회사는 밝혔다.
로렌 버넷 프로메테우스 대표는 지난 6월 미국 타임지에 “바이오 블록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10분의 1로 줄인다”며 “조명에 필요한 전기를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하면 3년 내 시멘트 제조 공정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시험생산 공장을 세워 내년부터 매달 2만1000장씩 바이오 블록을 찍어낼 예정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대체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설계한 SOM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해안 침식 막고 건물 균열도 보수
건설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11%를 차지한다. 시멘트 외에 철근 제조와 각종 자재 배송에도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2060년까지 전 세계 건물이 두 배로 늘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도 증가한다. 바이오 시멘트는 건설산업을 기후문제를 유발하는 악당에서 해결사로 변신시킬 수 있다.
바이오 시멘트, 콘크리트를 개발하는 곳은 여럿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바이오메이슨(bioMason)은 이미 상용화를 이뤘다. 이 회사는 바이오 시멘트로 만든 타일을 미국과 유럽에 벽과 바닥재로 판매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바이오기업인 바실리스크(Basilisk)도 역시 미생물로 건물과 교량에 생긴 균열을 스스로 보수하는 바이오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바이오메이슨은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광합성 세균을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균을 배양할 때 먹이가 될 당분이나 아미노산 같은 유기물을 줘야 한다. 진저 그리그 도시어 대표는 “바이오 시멘트는 기존 시멘트보다 모래와 접착력이 훨씬 낫다”며 “덕분에 타일을 만들 때 모래 대신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 부스러기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바실리스크는 2017년 델프트대의 헹크 존커 교수팀이 설립했다. 존커 교수는 세균 포자와 영양물질이 들어있는 알갱이를 시멘트, 모래, 물과 섞어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포자는 물이 들어오면 탄산칼슘을 합성하지만 일단 콘크리트가 굳으면 활동을 멈춘다. 하지만 건물이나 교량에 균열이 생기면 그 틈으로 물이 스며든다. 포자는 활동을 재개해 탄산칼슘을 분비하고 균열을 메운다.
바실리스크는 바이오 콘크리트가 건축물의 수명을 늘려 비용 절감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을 더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균열이 덜 생기는 만큼 보강용 철근을 절반 정도 덜 써도 되는 장점도 있다”며 “철근을 덜 쓰는 것은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철을 만들려면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섭씨 1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철광석과 석탄의 일종인 코크스를 함께 녹이는데, 이 과정에서 코크스의 탄소가 철광석 중의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진다.
싱가포르 난양 공대 토목환경공학과의 지안 추 교수도 지난 5월 국제 학술지 ‘환경화학공학저널’에 “오줌과 산업폐기물로 해안 침식을 방지할 바이오 시멘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아세틸린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페기물인 카바이드 침전물에 요소를 넣었다. 세균은 요소를 암모늄과 탄산염으로 분해한다. 이후 탄산염은 카바이드 침전물에 있는 칼슘 이온과 결합해 시멘트 원료인 탄산칼슘이 된다. 요소는 오줌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추 교수는 “세균이 만든 탄산칼슘 용액은 무색이어서 침식된 해안과 균열이 생긴 조각이나 조각상에 부으면 된다”며 “싱가포르 국립공원관리청의 지원을 받아 남쪽 해안 한 곳과 섬 한 곳에서 침식지형 보강 실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정부와 군이 R&D 적극 지원
바이오 시멘트, 콘크리트는 미국 정부와 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미국 콜로라도대 생화학과의 제프리 캐머런 교수 연구실에서 시작했다. 캐머런 교수는 2016년 미 국방부로부터 생체 건축 재료 개발 과제를 지원받았다.
정부 지원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미 에너지부는 건물을 일종의 탄소 저장 구조물로 만드는 프로젝트 18건에 3900만달러(한화 500억원)를 지원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를 설립한 콜로라도대 연구진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곰팡이나 버섯 같은 균류로 단열재를 만들고, 미생물로 철재만큼 강한 목재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지원을 받았다.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미 공군연구소는 바이오메이슨과 활주로를 보수하는 바이오시멘트 스프레이를 개발하고 있다. 회사는 바이오 시멘트 스프레이를 뿌리면 활주로가 3일 이내 굳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지구 밖에서도 바이오 시멘트가 주목받고 있다. 캐서린 힉스 미 국방부 차관은 지난 8월 열린 컨퍼런스에서 “세균 용액을 달이나 화성 토양 위에 뿌려 착륙장을 만들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가격 경쟁력이다. 아무리 친환경 자재라고 해도 가격이 비싸면 보급이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협력한 설계사 SOM은 지난 6월 타임지에 “건축회사로서 프로메테우스의 바이오 블록이 대량생산에 용이하다는 점에 끌렸다”고 밝혔다. 미생물 배양방식은 쉽게 용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성균관대 자기치유친환경콘크리트연구센터(센터장 이광명 교수)가 바이오 시멘트를 개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중 하나로 경기대 양근혁 교수가 센터와 함께 개발한 세균 기반 구조물 보수 공법을 뽑았다.
이광명 교수는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세균과 영양물질이 든 재료를 3-5% 섞으면 된다”며 “균열이 생기면 세균 포자가 물, 산소와 만나 시멘트를 만들어 메운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미 네덜란드 바실리스크와 같은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뜨렸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Journal of Environmental Chemical Engineering, https://doi.org/10.1016/j.jece.2022.107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