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늘 티라노사우루스는 고기를 뜯고 기다란 목을 가졌거나 뿔 세 개 달린 공룡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다. 과학자들이 공룡의 치아를 통해 초식공룡의 조상이 사실은 풀뿐 아니라 고기도 마다하지 않는 잡식성이었음을 밝혀냈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에밀리 레이필드 교수 연구진은 지난 1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치아 형태를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디플로도쿠스(Diplodocus)처럼 초식공룡으로 알고 있던 많은 종류가 처음엔 고기도 먹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초식공룡 조상은 육식 즐겨
학계에서는 공룡을 크게 도마뱀과 비슷한 골반을 가진 용반목(龍盤目), 새와 비슷한 골반을 가진 조반목(鳥盤目)으로 나눴다. 용반목은 다시 두 발로 걷는 티라노사우루스, 벨로키랍토르 같은 수각류(獸脚類) 육식공룡, 긴 목을 가진 브론토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같은 용각류(龍脚類) 초식공룡 무리로 나뉜다.
반면 조반목은 이마에 뿔이 세 개 나있는 트리케라톱스와 온몸에 갑옷을 두른 모양의 안킬로사우루스처럼 용반목을 제외한 모든 초식공룡이 포함된다. 이름과 달리 오늘날 새는 조반목이 아니라 용반목에서 진화했다.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긴 목을 가진 용각류인 응웨부 인트로코(Ngwevu intloko)와 조반목 공룡인 레소토사우루스 디아그노스티쿠스(Lesothosaurus diagnosticus)를 포함해 초기 공룡 11종의 치아를 분석했다. 응웨부와 레소토사우루스는 2억년 전에 나타났다.
논문 제1 저자인 안토니오 발렐 마요랄 박사는 “치아는 동물이 음식을 부수는 도구이므로 식성을 알려주는 단서”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공룡의 치아 형태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음식을 씹을 때 힘이 어떻게 분산되는지 분석했다. 이 결과를 인공지능(AI)에 입력하고 이구아나, 게코도마뱀붙이, 뱀, 악어 등 오늘날 파충류 47종의 치아 형태와 비교했다.
분석 결과, 응웨부 인트로코 같은 초기 용각류는 초식성으로 분류됐다. 치아가 바로 서있고 촘촘하게 나있어 풀을 씹는데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같은 용각류라도 그보다 더 이전인 2억 3700만년 전에 살았던 부리오레스테스 슐치(Buriolestes schultzi)는 육식성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리오레스테스의 치아는 오늘날 육식 파충류인 코모도왕도마뱀처럼 날이 서 있고 휘어져 있었다. 먹이를 물고 뜯을 때 힘이 작용하는 형태도 같았다.
◇다양한 환경 맞춰 식성 한 가지로 진화
과학자들은 초기 공룡은 모두 초식성이었다가 이후 육식과 초식, 잡식으로 분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와 달리 처음부터 여러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번 연구 결과는 후자를 뒷받침한다.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는 잡식성과 초식성, 육식성 공룡이 있었지만, 이들의 조상은 후손과 식성이 같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라이아스기는 고생대 페름기와 중생대 쥐라기의 사이이다. 이를테면 트리케라톱스와 안킬로사우루스, 오리주둥이공룡 같은 초식성 조반목 공룡들의 조상은 잡식성으로 고기도 즐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용각류인 디플로도쿠스도 영화에서 기다란 목과 거대한 몸집으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그 조상은 처음엔 고기를 먹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조반목과 용반목 모두 조상은 지금까지 생각처럼 초식성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며 “초기 공룡은 식성이 다양했다”고 밝혔다.
발렐 박사는 “초기 공룡이 특별한 이유는 트라이아스기 동안 다양한 식성으로 진화했다는 점”이라며 “이것이 공룡이 진화과정에서 성공한 핵심 요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영국 에든버러대의 스티브 브뤼사트 교수는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초기 공룡은 처음에 육식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해 종 분화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초기 공룡 일부는 이미 다양한 식성을 실험하고 있었으며 이점이 공룡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 Advances,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q5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