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와 돌고래가 청각을 잃는 건 인간이 시력을 잃는 것과 같다. 그런데 바닷속 소음공해가 이들의 청력을 앗아가고 있다. 이러면 고래와 돌고래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행위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영국 고래·돌고래 보존 협회(WDCS)의 대니 그로브스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최근 BBC 인터뷰에서 “고래와 돌고래에게 청력은 곧 생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바다에서 이뤄지는 각종 군사 훈련과 대형 선박을 이용한 물자 운송 등으로 발생하는 소음 공해가 고래와 돌고래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바다 깊은 곳에 폭탄을 설치해 터뜨리는 방식으로 광물을 채취하는 경우까지 늘면서 고래와 돌고래들이 받는 부정적 영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바닷속 소음공해는 특히 돌고래, 범고래, 향유고래처럼 이빨을 써서 먹잇감을 잡는 이빨고래류 동물들에 치명적이다. 이들은 사냥할 때 먹잇감을 향해 초음파를 발사한다. 발사한 초음파가 먹잇감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그 위치를 파악한다. 바닷속에서 먹이를 사냥하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청각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소음공해가 고래와 돌고래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있었다. 일례로 스페인 라스팔마스 데 그란카나리아 대학교 산하 동물건강 및 식품안전연구소(IUSA)의 안토니오 페르난데즈 소장은 지난 2005년 바닷속에서 갑작스레 발생하는 큰 소음이 고래·돌고래의 청각기관 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올해 6월에는 지구 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얇아진 뒤 대형 선박과 천연자원 시추가 늘면서 이곳에 살던 일각돌고래들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일각돌고래들은 큰 소리가 들리면 몸을 숨기기 위해 바다 깊은 곳으로 빠르게 헤엄쳐 들어간다. 이때 몸속에서 혈액과 산소가 순환하는 방식도 급격히 변하는데, 바다 깊이 도망치는 일이 자주 벌어지면 몸이 그러한 변화를 견디지 못해 생존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다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학교의 카를로스 두아르테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바다에서 생명체가 내는 소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대형 선박, 자원 채굴, 해안선 공사 등으로 발생하는 인위적 소음은 급증했다.
여기에 최근 폭탄을 이용해 바닷속 광물을 캐는 해저 채굴에 대한 수요까지 생기면서 고래·돌고래가 입을 피해는 더 커질 가능성도 생겼다. 미국 해양생물 연구소인 ‘오션스이니셔티브’의 롭 윌리엄스 수석연구원팀은 깊은 바닷속 한 지점에서 폭탄을 터뜨렸을 때 발생한 소음이 반경 500㎞까지 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고래·돌고래의 청각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생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영국 불법 고래잡이 조사 프로그램의 롭 디빌 선임 연구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 환경오염에 바닷속 소음공해까지 겹친 영향으로 바다 생물들 청각은 물론 면역체계에까지 이상이 생길 수 있다”며 “이러면 부차적으로 생식까지 못하게 되면서 종 보존을 위해 태워나야 할 새끼들까지 나오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Veterinary Pathology, DOI: https://doi.org/10.1354/vp.42-4-446
Functional Ecology, DOI: https://doi.org/10.1111/1365-2435.1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