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젖과 비슷한 영양물질을 분비해 애벌레를 키운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젖이 포유류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개미가 서로 돕고 사는 사회적 동물이 된 것도 젖 때문이라고 추정됐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일 번데기 주변에 개미와 애벌레들이 몰려 있는 시진을 올렸다. 미국 록펠러대의 대니얼 크로나우어 교수 연구진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번데기가 영양물질이 풍부한 액체를 분비해 개미 성충과 애벌레에게 제공한다고 밝혔다.
◇번데기와 애벌레의 상호 부조
개미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이다. 처음 알에서 나오면 지렁이처럼 몸통만 있는 애벌레가 된다. 다음 단계인 번데기는 더듬이와 다리가 모두 생겼지만 접힌 상태로 있다. 번데기에서 나오면 성충이 된다.
록펠러대 연구진 무리 약탈 거미(학명 Ooceraea biroi) 번데기가 성충이 되기 전에 6일 동안 몸에서 액체를 분비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개미와 애벌레들이 번데기 주변에 몰려 액체를 먹어치웠다. 연구진이 번데기의 몸에 식용색소를 주입했더니 24시간 안에 개미 성충과 애벌레 소화기관에 색소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개미 집단에서 액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번데기를 무리에서 떼어 놓았다. 그러자 번데기 몸에 액체가 쌓이면서 결국 곰팡이 감염으로 이어졌다. 연구진이 몸에 쌓인 액체를 제거하자 다시 번데기는 정상적으로 자랐다. 개미 성충과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분비되는 액체를 없애 번데기를 돕는 것이다.
개미 성충과 애벌레도 번데기 도움을 받았다. 연구진이 애벌레가 번데기 젖을 먹지 못하게 하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생존율도 떨어졌다. 번데기가 분비하는 액체에는 호르몬들이 들어있었다. 연구진은 이 호르몬이 애벌레 성장을 도울 것이라고 추정했다.
크로나우어 교수는 “번데기가 분비하는 액체는 서로 다른 발생 단계에 있는 개체들이 서로 의존하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성충과 애벌레는 번데기의 몸에서 액체를 없애 곰팡이 감염을 막고, 애벌레는 번데기가 분비하는 액체 덕분에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다른 개미 4종에서 똑같이 번데기가 성충이 되기 전에 영양액을 분비하는 것을 확인했다. 크로나우어 교수는 “개미는 1만5000여종이 있어 전체가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관찰로는 모든 개미가 애벌레 단계에서 영양액을 분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젖이 개미의 진사회성 도와
록펠러대 연구진은 번데기가 분비하는 젖이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개미는 이른바 진사회성(眞社會性, eusociality) 동물이다. 진사회성이란 집단에서 특정 개체가 자손을 낳고, 다른 개체들은 자식들을 공동으로 부양하는 특성을 말한다. 개미 사회는 여왕개미만 알을 낳고 같은 암컷인 일개미가 키운다,
과학자들은 일개미들이 이타주의적 행동을 하는 이유를 ‘친족(親族) 선택’으로 설명했다. 자신과 유전자를 상당 부분 공유하는 친족을 도우면 그들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퍼뜨리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암컷인 일개미가 직접 알을 낳지 않고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여왕개미의 알을 보살피는 것이 바로 친족 선택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는 개미 군집에서 서로 다른 발생 단계의 개체들이 영양물질 때문에 서로 의존하면서 진사회성이 발달했다는 영양 이론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 제13대학의 파트리지아 데토레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영양 이론은 20세기 후반 집단 유전학 이론이 사회적 곤충의 진화에 대한 설명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쇠퇴했지만 이번 세기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