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27) 참가자가 '화석연료 퇴출'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이 2035년까지 모든 화석연료 발전소 가동을 멈춰야 파리 기후협정에서 합의한 지구 온도 상승 제한 기준에 부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5년 체결된 파리 기후협정은 21세기 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달 20일 막을 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도 파리 기후협정이 제시한 목표를 재확인됐다.

22일 독일 기후정책 연구기관 클라이메이트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의 클레어 파이슨(Claire Fyson) 기후정책 책임 연구팀은 한국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을 기반으로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팀은 2035년까지는 석탄·가스를 이용한 발전소를 국내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석탄발전소는 가스발전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훨씬 높기 때문에, 2029년까지는 모두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봤다.

연구팀은 한국의 ‘에너지믹스(전력 발생원의 구성비율)’ 시나리오를 총 21개로 가정하고, 그중 실현 가능성과 에너지 예산, 기반 시설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모델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탄소 저감 장치가 적용되지 않은 화석연료 발전소의 감축 수준과 재생에너지·원자력·CCS(탄소 포집 저장) 기술 적용 화력발전 비중, 발전량 변화 등의 지표를 고려했다.

그 결과, 석탄발전소는 2029년까지, 가스발전소는 2035년까지 가동을 멈춰야 한국의 탄소 예산(Carbon budget)이 모두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예산은 섭씨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21세기 말까지 배출될 수 있는 온실가스양으로, 기후변화 관련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2020년 기준 세계 탄소 예산을 4600억t, 한국 탄소 예산은 50억t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지난해 잠정 기준 6억7960t으로, 전체 국가 중 8위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화석연료의 빈 자리는 풍력·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통해 채워야 한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다만 재생에너지는 날씨나 환경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수소를 통한 발전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서는 45테라와트시(TWh)의 수소 발전량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는 원자력 발전량을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화석연료 발전을 줄일 것을 권장했다.

연구진은 “한국이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는 것은 2021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밝힌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선진국이 2035년까지 전력부문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과와 부합하는 분석”이라며 “추가적인 화력발전소 건설은 기후위기 대응을 역행하는 것이고, 한국 내에서 가스발전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래픽=이은현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 연구진의 조언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8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살펴보면, 화석연료 발전소는 2036년까지 여전히 전력수급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계획안에 따르면 석탄발전은 27.1기가와트(GW)로 전체 전력수급량의 18.9%를,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은 63.5GW에 44.2%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일 경우, 전력수급난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화석연료 발전소 가동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은 석탄발전소에 대한 폐쇄는 단계적으로 진행하지만, 기존 전력량을 대체하기 위해 가스발전소 폐쇄는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이야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낮고, 원자력 발전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LNG 발전까지 급격하게 줄일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도 기본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에 대한 방향성은 가지고 있지만, 재생에너지를 급격히 늘리면 빈번한 정전사태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성과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역량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파리협정의 ‘1.5도 목표’가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는 올해 COP27에서도 제기됐다. 과학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COP27 참석자 사이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고, 유럽의 석탄 의존도가 올라가면서 파리협정의 목표가 좌절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심지어 내년 두바이에서 개최되는 COP28에서도 화석연료 발전에 대한 진전 있는 논의가 없을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