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항암 백신이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악성 뇌종양 환자의 생존 기간을 눈에 띄게 늘렸다. 허가를 받는다면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악성 뇌종양 환자의 수명을 늘린 신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제약사 노스웨스트 바이오세러퓨틱스(Northwest Biotherapeutics)는 18일 “맞춤형 면역 항암 백신인 디씨백스(DCVax)가 임상 3상 시험에서 교모세포종으로 처음 진단받거나 재발한 환자의 생존기간을 모두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재발 환자는 백신으로 생존기간이 두 배까지 늘었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미의사협회저널 종양학(JAMA Oncology)’에 실렸다.
◇재발 환자 생존기간 두 배 늘려
교모세포종은 뇌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교세포에 발생하는 종양이다. 교세포는 신경세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뇌종양 중에서 가장 악성이어서 진단 후 항암제와 수술을 병행해도 15~17개월만 살 수 있으며, 5년 생존률이 5%에 불과하다.
논문 대표 저자인 노스웨스트 바이오세러퓨틱스의 마르니스 보쉬 박사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 독일의 병원 94곳에서 70여명의 의료진과 함께 교모세포종 환자 331명을 대상으로 마지막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232명은 백신을 피하 주사로 투여 받고, 99명은 가짜 약을 받았다.
임상시험 결과, 교모세포종으로 새로 진단 받은 환자는 백신을 투여 받고 평균 19.3개월 생존했다. 가짜 약을 받은 환자는 16.5개월이었다. 연구진은 백신 투여 환자 중 13%는 진단 후 최소 5년 간 생존했다고 밝혔다. 가짜 약 그룹은 5.7%에 그쳤다.
병이 재발한 경우 백신 투여군은 평균 13.2개월 생존했고, 가짜약 그룹은 생존 기간이 7.8개월이었다. 재발한 지 2년 뒤 생존률은 백신 투여군이 20.7%인데 가짜 약은 9.6%에 그쳤다.
연구진은 백신을 2100회 이상 투여했지만 심각한 부작용은 5번에 그쳤다고 밝혔다. 뇌 부종이 3건 나타났고, 메스꺼움과 림프샘 감염이 각각 한 건씩 있었다.
◇면역세포에 암 찾는 눈 달아
디씨백스는 환자 자신의 면역체계로 암을 이겨내도록 한다.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인 수지상세포와 암세포에만 있는 항원을 결합한 것이다. 말하자면 면역세포에 암을 찾아낼 눈을 달아준 셈이다.
수지상세포는 이름 그대로 나뭇가지 모양이다.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의 단백질을 주력 면역세포가 인지할 수 있도록 전달한다. 결국 디씨백스는 면역체계의 정보부대에 뇌종양 세포를 바로 짚어내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영국 킹스칼리지대학뱡원의 케유마스 아슈칸 교수는 이날 가디언지와 인터뷰에서 “매우 놀라운 결과”라며 “고령자나 수술이 불가능한 사람처럼 예후가 나쁜 환자도 생존기간이 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53세 한 영국 환자는 백신 투여 후 지금까지 7년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뇌종양연구재단의 카렌 노블 박사는 “디씨백스는 2005년 미국 머크의 테모졸로마이드(상품명 테모람)가 나온 이후 처음으로 교모세포종에 효과가 있는 치료제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노스웨스트 바이오세러퓨틱스는 이번에 교모세포종으로 새로 진단받은 환자 대상 임상 3상 시험으로는 근 20년 만에 나온 결과이며, 재발 환자 대상으로는 약 30년 만이라고 밝혔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 15년 간 교모세포종 대상 임상시험이 400건 이상 진행됐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참고자료
JAMA Oncology, DOI: https://doi.org/10.1001/jamaoncol.2022.5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