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건설된 남극의 중성미자 연구시설 아이스큐브의 야경. 전 세계 58개 연구기관 과학자 350여명이 공동 연구하고 있다./IceCube

남극의 2㎞ 아래 얼음에서 ‘우주의 유령’으로 불리는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가 검출됐다. 2017년 이후 두 번째 성과이다. 과학자들은 중성미자를 분석하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고 진화했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고 기대한다.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의 프랜시스 할젠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남극의 중성미자 연구시설인 아이스큐브(IceCube)에서 지구로부터 4700만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9조4600억㎞) 떨어진 고래자리 A은하(NGC 1068)로부터 날아온 고에너지 중성미자 79개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물리학과의 카르스텐 로트 교수와 정민진 연구원 등 한국 연구자들도 저자 377명에 포함됐다.

우주의 유령 두 번째 포착

중성미자는 우주가 탄생한 빅뱅 직후에도 나왔고, 태양의 핵융합이나 원전(原電)의 핵분열 반응에서도 나온다. 다른 물질과 반응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늘 있다. 매초 손톱만 한 면적에 1000억 개 정도의 중성미자가 지나간다. ‘우주의 유령’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8년 한국을 포함해 12국 과학자 300여 명은 사이언스에 전해 아이스큐브가 포착한 중성미자는 37억광년 떨어진 오리온자리의 블랙홀(TXS 0506+056)에서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그보다 100배 더 가까운 곳에서도 우주의 유령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고래자리 A은하는 일반인도 밤에 큰 쌍안경으로도 볼 수 있다.

지구로부터 4700만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9조4600억㎞) 떨어진 고래자리 A은하(NGC 1068, 네모 안). 가까운 은하여서 일반인도 쉽게 관측할 수 있다. 선으로 표시된 것은 고래자리이다./IceCube

우주에서 어떤 격변이 일어나 고에너지 양성자가 다른 입자와 충돌하면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들이 쏟아진다. 이중 일부가 나중에 에너지를 발산하고 붕괴하면서 중성미자를 방출한다. 고래자리 A은하는 지구에서 고래자리 방향으로 있는 나선은하로, 중성미자를 방출하기에 완벽한 조건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은하여서 중심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면서 동시에 일부를 열복사 형태로 방출한다. 이때 중성미자가 발생한다.

문제는 고래자리 A은하는 중심부가 두꺼운 가스와 먼지로 가려져 관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할젠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10년 간의 관측 결과를 발표할 때 이미 고래자리 A은하에서 나온 자료도 있었지만 실제 중성미자인자 잡음인지 확실치 않았다”고 말했다. 중성미자 첫 관측 이래 분석 방법이 발전하면서 이번 성과가 가능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남극 아문젠-스콧 기지에 있는 아이스큐브는 2010년 건설됐다. 현재 전 세계 58개 연구기관의 과학자 350여명이 공동 연구하고 있다. 아이스큐브 과학자들은 남극 얼음 아래에 광센서 5160개를 심어 놓고 중성미자가 아주 드물게 물을 이루는 수소·산소 원자핵이나 전자와 부딪히는 흔적을 찾아왔다. 중성미자가 원자핵에 부딪히면 연못에 돌멩이를 던질 때 나타나는 파문(波紋)처럼 원형으로 빛의 충격파가 생긴다. 광센서는 이 신호를 감지한다.

남극의 중성미자 검출 시설인 아이스큐브. 남금 2km 지하 얼음에 5000여개의 광센서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조선일보DB

1995년 이래 중성미자 연구로 노벨상 쏟아져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가 다시 검출되자 이른바 ‘중성미자 천문학’으로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크게 넓힐 수 있다고 기대한다. 아이스큐브가 중성미자의 흔적을 감지하면 전 세계 천문대가 중성미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발원지를 찾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별 표면에서 나오는 낮은 에너지만 관측했다. 과학자들은 별이 폭발할 때 중심부에 있는 훨씬 더 큰 에너지는 중성미자를 통해 우주로 방출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중성미자를 통해 별의 폭발도 과거와 달리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젠 교수는 “이번에 아이스큐브가 포착한 수조 전자볼트 에너지의 중성미자는 모든 질문에 답하기에 충분치 않지만 중성미자 천문학을 실현할 엄청난 진전임에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100년 넘은 우주선(宇宙線)의 미스터리도 중성미자로 풀 수 있다. 별이 충돌하거나 초거대 블랙홀이 작동하면 엄청난 에너지의 입자들이 쏟아진다. 바로 우주선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도중에 자기장이나 다른 입자와 반응해 경로가 뒤틀린다. 반면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아 이동 경로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아이스큐브 과학자들은 우주선과 함께 나온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찾으면 우주선의 비밀도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극 얼음 밑 2km에 일렬로 매달린 농구공 모양의 광센서들이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가 산소, 수소 원자핵과 부딪힌 흔적을 포착했다. 우주 중성미자는 이번에 두 번째로 포착됐다./IceCube

중성미자는 노벨상의 보고(寶庫)이다. 1956년 미국 물리학자 프레더릭 라이너스는 원전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처음으로 관측했다. 그는 199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앞서 1988년 미국 과학자 세 명이 입자가속기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일본 과학자들도 그 뒤를 이었다.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도쿄대 교수는 폐광에 물 4500t을 담은 중성미자 관측 시설 가미오칸데에서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교수는 가미오칸데의 업그레이판인 2세대 수퍼 가미오칸데에서 대기에서 발생한 중성미자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종류가 바뀐 것을 관찰해 역시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cience.org/doi/10.1126/science.abg3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