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에 강한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학명 Deinococcus radiodurans)’는 화성 지하 10m에서 2억8000만년까지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미 국립군의관의대

박테리아가 화성의 극한 환경에서도 땅밑에서 2억8000만년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장차 화성에서 가져온 토양 시료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가 나왔다. 동시에 우주선이 가져간 지구 미생물에 화성이 오염되면 마찬가지로 장기간 생존해 영향이 오래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미국 국립군의관의대의 마이클 달리 교수와 노스웨스턴대의 브라이언 호프만 교수 연구진은 26일 국제 학술지 ‘우주생물학(Astrobiology)’에 “박테리아가 동결 건조되면 화성에 쏟아지는 방사선과 태양풍에도 2억 8000만년까지 생존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람 치사율 2만8000배 방사선도 견뎌

현재 화성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다. 물이 없고 중위도 온도가 섭씨 영하 63도까지 떨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먼 우주에서 방사선이 날아오고 태양에서는 고에너지 입자 흐름인 태양풍이 쏟아진다. 달리 교수와 호프만 교수는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 미생물이 얼마나 생존할 수 있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지구의 박테리아와 곰팡이 6종을 동결 건조시켜 방사선인 감마선과 태양풍을 이루는 양성자를 쏘였다. 연구진은 미생물 세포에서 항산화 망간 수치를 측정해 생존 기간을 추정했다. 미생물이 견딜 수 있는 방사선 수치는 항산화 망간의 양과 비례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앞서 실험에서 방사선에 강한 박테리아인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학명 Deinococcus radiodurans)’는 화성 표면 바로 밑에서 120만년 동안 쏟아지는 방사선에 해당하는 2만5000그레이까지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전 실험은 물이 없는 환경에 맞춰 미생물을 건조시키기만 했지 얼리지는 않았다.

호프만 교수는 “화성은 땅도 대기도 물이 없어 세포나 포자가 바로 건조되며, 표면 온도는 드라이 아이스와 비슷한 수준이어서 바로 얼어버린다”고 말했다. 이번에 박테리아를 동결 건조하면 사람 치사량의 무려 2만8000배에 해당하는 14만그레이까지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데이노코쿠스가 10㎝ 깊이만 묻혀 있어도 150만년은 생존할 수 있고, 10m 깊이라면 생존 기간이 2억8000만년까지 늘어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유럽이 개발한 로절린드 프랭클린 로버가 화성을 탐사하는 모습의 상상도. 최초로 지하 2m까지 시추할 계획이다. 원래 올 9월 러시아 로켓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서방과의 우주협력을 중단하는 바람에 무산됐다./ESA

지구, 화성 동시 미생물 오염 가능

데이노코쿠스는 기네스북에서 세계에서 가장 극한의 환경에 사는 박테리아로 기록됐다. 학명은 그리스어로 ‘방사선을 견디는 놀라운 열매 또는 낟알’이라는 뜻이다. 보통 1932년 미국의 판타지, 과학 잡지에 나온 영웅인 ‘코난 바바리안’의 이름을 따 ‘코난 박테리아’로 불린다. 연구진은 코난 박테리아는 방사선으로 인한 유전자 손상을 잘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아무리 코난 박테리아도 화성 표면이라면 몇 시간 안에 죽지만, 방사선을 차단할 수 있으면 생존 기간이 급상승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만약 코난 박테리아와 비슷한 미생물이 과거 화성에 있었다면 땅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동면 상태로 남아 있어 장차 화성 탐사에서 찾을 가능성도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유럽이 개발한 화성 탐사 로봇인 ‘로절린드 프랭클린 로버’나 미국이 추진 중인 화성 탐사선 ‘마스 라이프 익스플로러’는 지하 2m까지 시추 가능한 장비를 장착할 예정이다.

달리 교수는 “데이노코쿠스라도 화성에서 물이 사라진 20억~25억년 동안 동면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면서도 “운석이 충돌하면 얼어붙은 땅이 녹고 물이 전달돼 중간 중간 미생물이 다시 번성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 생존했던 미생물의 거대분자나 그 속에 기생한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화성 탐사를 더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한다”고 밝혔다. 우주선이나 로봇에 묻어간 지구 미생물이 화성 땅속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성 시료에 포함된 미생물이 지구를 오염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호프만 교수는 “우리가 착륙한 곳을 오염시키면 그곳에서 발견한 미생물이 원래 있던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가져온 것인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지구 미생물과 화성 미생물을 구분하지 못하면 화성에 생명체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Astrobiology, DOI: https://doi.org/10.1089/ast.2022.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