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멸종한 사촌인 네안데르탈인이 전적으로 육식(肉食)에 의존했다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의 식성을 두고 채식을 했다느니, 잡식성이라느니 과학계에서 논란이 지속됐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지구과학환경연구소의 클레르비아 자우엉 박사 연구진은 18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15만년 전 스페인 동북부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치아를 분석해 전적으로 육식에 의존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연 동위원소로 식성 추적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 화석인류로, 40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3~4만년 전 멸종하기까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수만년 공존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7만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대규모 이주했다.
연구진은 스페인 동북부 가바사 동굴에서 나온 1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어금니를 분석했다. 보통 과학자들은 치아 화석에서 콜라겐 단백질을 추출하고 그 안에 있는 질소 동위원소를 비교해 생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알아낸다. 하지만 5만년 이상 오래된 화석에서는 단백질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대신 처음으로 치아에서 마모가 가장 덜 되는 법랑질에 있는 아연 동위원소를 분석했다.
동위원소는 같은 원소이지만 원자량이 다른 것을 말한다. 아연은 원자량이 66과 64인 동위원소가 있다. 근육에는 무거운 아연66보다 가벼운 아연64 동위원소가 많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이 육식을 많이 했다면 치아에 가벼운 아연 동위원소가 더 많아야 한다.
분석 결과 가바스 동굴의 네안데르탈인은 원자량 66인 무거운 동위원소가 64인 가벼운 동위원소의 0.35퍼밀(퍼밀은 1000분율)에 불과했다. 사실상 대부분 가벼운 동위원소였다는 말이다. 당시 살았던 대형 초식동물은 그 비율이 1.24퍼밀이고, 육식동물은 0.92퍼밀이었다.
뼈까지 먹는 하이에나를 빼면 고기만 먹는 늑대나 스라소니 같은 육식동물의 무거운 동위원소 비율은 0.85퍼밀이었다. 뼈에는 무거운 동위원소가 많다. 잡식성인 동굴곰은 1.15퍼밀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초식이나 잡식성 동물보다 육식동물에 훨씬 가까웠다는 말이다.
◇채식, 물고기 즐겼다는 주장도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의 식성은 연구에 따라 채식과 육식을 오갔다. 2014년 미국과 스페인 과학자들은 이베리아반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에서 덩이줄기나 견과류 같은 식물도 먹었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곤봉을 휘둘러 대형 동물을 사냥하는 야수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반면 2019년 프랑스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말이나 순록 같은 동물의 고기를 주로 섭취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에는 포르투갈에서 발굴된 화석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말이나 순록, 염소 같은 육지 동물뿐 아니라 물개와 조개, 물고기 같은 해양 동물도 먹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의 식성을 연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오늘날 인류와 가까운 존재로 재조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네안데르탈인은 눈썹 뼈가 툭 튀어나오고 지능이 떨어지는 미개인으로만 묘사됐지만 최근 이제까지 선입관을 무너뜨리는 유물들이 잇따라 발굴됐다.
네안데르탈인도 시신을 매장하고 정교한 도구와 정신구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2018년에는 스페인에서 6만4000여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동굴벽화가 스페인에서 발견됐다. 그전까지 동굴벽화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가 그렸다고 생각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박사는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분석해 호모 사피엔스와 피까지 나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의 뼈 화석에서 추출한 DNA와 비교했더니 오늘날 아시아인과 유럽인은 누구나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1~2% 갖고 있었다. 식성 연구는 현생인류의 또 다른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프랑스 연구진은 이번에 사용한 아연 동위원소 분석법을 다른 곳에서 발굴한 네안데르탈인 화석에도 적용해보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앞서 연구들이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현재 프랑스 남동부 뻬헤 유적지에서 나온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아연 동위원소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PNAS, https://doi.org/10.1073/pnas.210931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