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의 뇌에서 감각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1000분의 5초 단위로 확인한 영상. 밝게 빛나는 부분이 신경신호가 발생한 영역이다./성균관대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1000분의 1초 단위로 거의 실시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신경신호가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 뇌 질환과 인간의 인지기능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장연 성균관대 교수 연구진은 1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신경신호 전달을 시공간에서 고해상도로 확인할 수 있는 뇌 영상기법인 다이애나(DIANA, direct imaging of neuronal activity)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국내 연구진이 뇌 신경신호 전달을 실시간 관측하는 다이애나 기법을 개발했다./성균관대

신경신호 전달을 8배 빨리 감지

다이애나는 ‘신경 활동 직접 촬영’이란 뜻의 영문 약자이다. 뇌에 전극을 꽂지 않고 기존 MRI(자기공명영상) 장치에서 얻은 정보로 뇌에서 신경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마취한 생쥐를 MRI 장치 안에 두고 수염에 전기자극을 줬다. 그 결과 신경신호가 감각중추인 시상을 지나 체성 감각 피질로 전달되는 과정을 1000분의 5초 단위로 확인했다. 기존 방법보다 8배나 빠른 속도이다. 신경신호가 발생한 위치는 고해상도 MRI와 마찬가지로 0.22㎜ 해상도로 알 수 있었다.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공간에서 실시간 확인한 셈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 뇌 기능 연구 기법의 한계를 해결한 성과로 평가된다. 과학자들은 뇌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전기장이나 자기장의 변화를 뇌전도, 뇌자도 장비로 측정했다. 이 장비는 신경신호 전달을 1000분의 1초 단위로 감지할 수 있지만 신호가 어디서 오는지는 ㎝ 단위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는 공간 해상도가 ㎜ 단위지만 시간 해상도는 초 단위에 그쳤다. 뇌에서 특정 영역이 작동하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 그쪽으로 피가 몰린다. fMRI는 이때 혈액 속 헤모글로빈 분자의 자기장 수치 변화를 감지해 피가 몰리는 곳을 영상에서 마치 불이 켜진 것처럼 환하게 보여준다.

성군관대 박장연 교수(왼쪽)가 생쥐의 뇌에서 발생한 신경신호를 1000분의 5초 단위로 확인한 영상을 보고 있다. 신경신호 전달을 시공간에서 사실상 실시간 관찰할 길을 연 것이다./성균관대

뇌질환 연구에 획기적 발전 기대

연구진은 MRI 장치에서 생쥐에게 0.2초마다 전기자극을 주고 1000분의 5초 단위로 뇌의 특정 영역을 촬영했다. 이후 MRI 영상 정보를 이어붙여 신경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확인했다. 신경신호가 감각중추인 시상을 0,010~0.015초에 나타났다가 0.020~0.025초에 체성 감각 피질을 지나는 것을 확인하는 식이다. 곽지현 고려대 교수(현 서울대) 는 생쥐의 뇌에 전극을 꽂고 같은 자극을 주면서 다이애나가 포착한 MRI 신호가 맞는지 검증했다.

박장연 교수는 “신경신호 전달을 1000분의 5초 단위로 확인할 수 있다면 이전에 보지 못하던 뇌 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를테면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나 정신질환 환자의 인지기능이 어느 정도 손상됐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치매에 걸린 생쥐를 대상으로 인지기능 손상을 판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박장연 교수는 뇌에서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아보는 연구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석사과정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해 의식의 기원에도 관심이 있다”며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파악하면 인공지능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퀸즐랜드대의 마르티즌 클루스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뇌기능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전기자극을 짧게 반복적으로 주는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이애나가 뇌 반응을 실시간 관찰할 수 있는 근본 원리도 알아내야 한다. 박 교수는 “fMRI가 혈액이 몰리는 것을 파악한다면 다이애나는 신경세포의 세포막이 신호가 전달될 때 부풀거나 표면과 근처의 물 분자 사이의 자기장 신호가 달라지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작동 원리를 더 밝혀낼 예정이다.

과학자들은 그전에도 뇌 연구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캐나다 웨스턴대의 라비 메논 교수는 이날 네이처 인터뷰에서 “작동 원리와 상관없이 뇌의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된 MRI 변화를 보여주는 정보”라며 “상세한 것은 나중에 알아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UC버클리의 벤 인글리스 교수도 “이번에 포착한 신호는 혈액 흐름의 영향일 수 있다”며 “신호가 어디서 오든 워낙 빨리 포착하기 때문에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 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h4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