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있는 IBM 왓슨연구소에서 백한희(왼쪽) 박사가 양자 컴퓨터를 구동하는 초전도 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미국과 중국이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 등 양자기술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혈투’를 벌이는 가운데 국내 양자 기술인력이 미국의 6분의 1, 중국의 11분의 1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대비 비율로는 크게 뒤지는 수치는 아니지만 향후 경쟁력과 연구 다양성을 유지하려면 인력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이와 관련해 양자대학원을 설립해 2030년까지 고급인력 1000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3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제1차 양자기술 인재정책 간담회와 양자대학원 현판식을 잇따라 열고 이런 내용의 인력 양성계획을 공개했다.

양자정보과학은 양자역학을 계산이나 통신에 적용해 더 빠르고 안전하며, 전력을 적게 쓰는 컴퓨터와 통신, 센싱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3명 배출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이미 국제적으론 실용화를 앞두고 패권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는 국가의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양자 기술이 좌우한다는 공통된 인식 하에 대규모 정부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양자정보과학기술이 적용된 양자컴퓨팅과 양자통신, 양자센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이 분야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양자컴퓨팅 이론과 기초연구를 마치고 2008년 국가양자정보과학연방비전을 수립하고 IBM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록히드마틴 등 기업과 각 대학과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중국 역시 양자암호통신 위성 무쯔를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리고 제13차 5개년 계획에 이어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에도 양자정보 기술을 전략적 연구개발 분야로 설정하고 13조원을 들여 국립양자과학연구소 설립하는 등 연구와 인력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직접 양자 기술 개발을 챙기는 등 일찌감치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국제적 흐름에 크게 뒤처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지난 7월 발행한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은 양자 연구가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에서 산발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만드는 주도적 조류를 만드는 지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초 물리 역량이 필요한 양자 기술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인력 교육과 유입이 쉽지 않은 분야로 분류되고 있어 지속적 투자와 인력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양자 분야 논문 주저자와 교신저자를 총 피인용수로 분석한 결과 한국 연구자 수는 500명으로 나타났다. 양자 컴퓨팅 261명, 양자통신 187명, 양자센싱 42명 등이다.

이는 중국이 5518명, 유럽연합(EU)이 4100명, 미국이 3122명, 영국 881명, 일본이 800명인 것과 비교된다. 인구대비 비율에서 크게 뒤지지는 않는 숫자지만 절대 규모가 떨어지면 연구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다.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재외한인 연구자도 50명 내외로 파악됐다.

미국 특허 목록에 공개된 국적별 출원인을 보면 한국은 100명으로 미국 1022명, EU 1363명, 중국 179명, 일본 87명으로 나타났다. 기술별로는 양자컴퓨팅 25명, 양자통신 68명, 양자센싱은 7명이다. 중국과 일본보다는 특허 출원인이 많지만 특허의 특성상 우선권이 강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과 유럽에 크게 뒤져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물론 과기정통부도 양자 분야 인력의 저변확대와 연구생태계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일단 현재 500명 수준인 전문인력을 2배인 1000명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김유식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정책과장은 “국내 양자 연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려면 양자 분야 연구자들의 숫자가 일정 규모를 더 넘어서야 한다”며 “인구대비 연구자나 특허 수보다 양질의 인력의 절대 규모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도 인력의 추가 충원을 위해 올해 2월 백악관 산하 국가양자조정실과 국립과학재단이 공동으로 ‘양자정보과학기술 인력개발을 위한 국가전략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도 국가양자컴퓨팅센터(NQCC) 설립을 하면서 박사급교육센터에서 교육훈련 지원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도 양자 통신·센서·컴퓨터·소자 4대 분야 대학정보통신기술연구센터(ITRC)에 더해 박사급 전문 인력을 추가로 양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양자역학 등 기초 과학과 양자 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고 물리학과 수학, 전기전자, 컴퓨터 공학 분야 지식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1000명의 ‘양자 스페셜리스트(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국내 대학과 기관과 협력해 2024년까지 매년 1개씩, 총 3곳의 양자대학원을 설립해 운영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날 간담회에 앞서 KIST 본원 내 L3동에선 고려대와 성균관대, 한양대 등 9개 대학과 기관이 참여한 연합 양자대학원 현판식이 열렸다. 양자대학원은 앞으로 9년간 석·박사를 대상하는 양자 특화 전문교육과정을 개발해 운영하고 학교별로 180명 이상, 모두 540명의 박사급 인재를 추가로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도 대학원별로 9년간 최대 242억원씩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기존 신진연구자가 양자 분야 핵심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재능 기반의 성장사다리 지원체계도 함께 마련하기로 했다.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고 선도적 연구를 단기간에 착수하기 위해 해외우수과학자유치사업(Brain Pool)을 통해 해외에서 양자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를 유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과기정통부는 연구와 인력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50큐비트 한국형 양자컴퓨터 구축 등 대규모 연구개발(R&D) 사업을 중심으로 핵심기술 개발과 석·박사 교육 훈련을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간담회엔 이영욱 KT인프라연구소장, 김동호 포스코홀딩스 퀀텀·AI센터장, 곽승환 제네시스퀀텀 대표,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이진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 단장, 박성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양자기술연구단 단장, 이순칠 한국연구재단 양자기술단 단장이 참여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논의된 전문가 의견 등을 바탕으로 정책과제를 구체화하여, 12월까지 양자 분야 핵심인재 확보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오태석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과기정통부는 2030년까지 양자 전문인력 1000명 이상 확보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양적 규모 확대뿐만 아니라, 연구자 역량도 향상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