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인 왁스웜(waxworm)은 침으로 폴리에틸렌을 분해해 비닐봉지에 구멍을 낸다./스페인 국립생물연구센터

벌집에 기생하는 나방 애벌레가 침으로 비닐봉지를 녹여 분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침속에 포함된 효소를 대량합성하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생물 공장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스페인 국립생물연구센터의 페데리카 베르토치니 박사 연구진은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인 왁스웜(waxworm)의 침에서 폴리에틸렌을 분해하는 효소 두 종을 찾았다”고 지난 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다.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인 왁스웜(waxworm)은 침으로 폴리에틸렌을 분해해 비닐봉지에 구멍을 낸다./스페인 국립생물연구센터

애벌레 침에서 분해 효소 두 종 찾아

폴리에틸렌은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물질로, 비닐봉지와 각종 포장재에 쓰인다. 산소와 잘 반응하지 않아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는다. 현재는 열이나 자외선을 가해 억지로 산소를 집어넣어 분해를 촉진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든다.

연구진은 폴리에틸렌을 애벌레 침에 한 시간만 노출시키면 자연에서 몇 년 지난 것처럼 구멍이 뚫리며 분해된다고 밝혔다. 애벌레 침은 상온과 일반 산성도 환경에서 작동했다. 상용화되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해 그만큼 석유에서 플라스틱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는 벌집에 기생한다. 낚시 미끼로도 쓰인다. 스페인 연구진은 2017년 우연히 나방 애벌레가 폴리에틸렌 성분의 비닐봉지를 분해하는 것을 확인했다. 베르토치니 박사는 아마추어 양봉가이다. 그는 “내가 키우던 벌집이 나방 애벌레에 감염된 것을 보고 청소를 하고는 비닐봉지에 넣었다”며 “얼마 후 에벌레를 집어넣은 비닐봉지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당초 연구진은 항생제를 먹이면 플라스틱 소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을 보아 애벌레의 몸에 있는 장내 세균이 플라스틱을 분해한다고 추정했다. 이번에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것이 애벌레의 침임을 새로 확인했다. 연구진은 애벌레의 침에서 단백질 200종을 찾아냈다. 이 중 두 종이 폴리에틸렌을 분해했다.

나방 애벌레가 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나방 애발레가 벌집에 기생하면서 밀납을 분해하려고 이 효소들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했다. 식물이 애벌레를 쫓으려고 분비하는 독성 화학물질을 분해하려고 효소를 진화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식물의 방어 물질은 플라스틱에 들어가는 첨가제와 구조가 비슷하다.

베르토치니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대규모 플라스틱 처리 시설에 적용할 수 있다”라며 “가정용 처리 키트로 만들면 집에서 바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메리카왕거저리의 애벌레인 수퍼웜(superworm)이 스티로폼을 씹어 먹으면 장내 세균이 이를 분해한다./호주 퀸즐랜드대

플라스틱 분해 생물들 잇따라 발견

플라스틱 쓰레기는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심해까지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단 3%가 바다로 흘러가지만, 그 양이 800만t에 이른다. 물개는 플라스틱 고리에 목이 졸려 죽고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거북의 배 안에는 비닐봉지가 가득했다. 잘게 쪼개진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생물의 몸속에 축적돼 내분비체계를 교란시킨다.

과학자들은 에너지가 많이 들고 독성물질을 쓸 수밖에 없는 기존 플라스틱 처리 방법을 생물 공정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연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생물들이 잇달아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호주 퀸즐랜드대 연구진은 딱정벌레인 아메리카왕거저리의 애벌레인 수퍼웜(superworm)이 스티로폼을 씹어 먹는 것을 확인했다. 스티로폼은 발포 폴리스티렌이라는 플라스틱의 상표명이다. 연구진은 애벌레가 스티로폼을 씹어 삼키면 장내 세균의 효소가 폴리스티렌을 단분자인 스티렌으로 분해한다고 밝혔다. 2015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갈색거저리의 애벌레인 밀웜(mealworm)이 스티로폼을 먹고 소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페트병을 분해하는 생물들도 있다. 2016년 일본 과학자들은 페트병 재활용 공장에서 발견한 이디오넬라라는 미생물에서 플라스틱 분해 효소 두 종류를 발견했다. 2년 뒤 영국 포츠머스대의 존 맥기헌 교수는 이 효소를 개량해 플라스틱 분해 능력을 20% 이상 높였다. 2020년 4월 프랑스 카르비오사(社)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퇴비 더미에서 찾은 미생물의 효소로 10시간에 페트병 90%를 분해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