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몸을 긁고 있으면 나도 가려워진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오랑우탄이나 쥐도 동료가 몸을 긁으면 따라 긁는다. 하품처럼 긁는 행동이 전염되는 현상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사 반응에서 비롯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몸을 긁는 행동이 어떻게 유발되는지 밝히면 병적인 만성 가려움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각 중추 거치지 않고 신호 전달
미국 워싱턴대 의대의 저우펑 첸 교수 연구진은 “남이 몸을 긁는 모습을 보고 따라 긁는 행동은 시각중추와 관계없는 반사 행동임을 동물실험으로 확인했다”라고 5일 국제 학술지 ‘셀 리포트’에 밝혔다.
연구진은 앞서 쥐가 모니터로 다른 동료가 긁는 모습을 보면 따라 긁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처럼 쥐도 가려움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려움의 전염은 시각중추가 관장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남을 따라 긁는 행동은 시각중추와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쥐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신경절 세포가 긁는 행동과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신경절 세포는 뇌에서 밤낮 주기를 감지하는 시교차 상핵으로 연결된다. 연구진은 2017년 동료가 긁은 모습을 모니터로 본 쥐는 뇌에서 시교차 상핵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을 괸찰했다.
실험 결과 빛이 신경절 세포에서 시교차 상핵으로 바로 전달되면 긁는 행동이 전염됐지만, 시각 중추로 가면 그런 행동이 나타나지 않았다. 첸 교수는 “신경절 세포의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을 없애면 시각 중추와 상관없이 쥐는 긁지 않았다”라며 “동료를 따라 몸을 긁는 것은 생존을 위해 발달한 반사 행동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개구리 사냥처럼 생존 위한 반사행동
연구진은 몸을 긁는 행동이 전염되는 것은 개구리가 벌레를 잡듯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반사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개구리는 뇌에 시각 중추가 없지만, 벌레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해 생존한다. 벌레라고 인지하지 않아도 작은 움직임에 바로 혀를 내밀어 붙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쥐는 야행성 동물이다. 빛이 약해 눈으로 보기 힘든 환경에서 움직인다. 이때 동료가 몸을 긁으면 모기가 물었든지 뭔가 해로운 일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쥐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바로 따라 긁어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첸 교수는 “실제로 눈으로 봤다고 인식하지 않고도 남을 따라 몸을 긁는 행동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방어 행동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영한 동물에서 남을 따라 긁는 행동이 관찰됐다. 2020년 벨기에 앤트워프대의 단 라메리스 교수 연구진은 ‘미국 영장류학 저널’에 오랑우탄들은 하품을 따라 하듯 동료가 몸을 긁으면 따라 긁는다고 발표했다. 가려움의 전염은 영장류에서는 2004년에 일본 원숭이에서 처음 확인됐으며, 2013년 붉은털원숭이에서도 같은 행동이 관찰됐다.
2017년 워싱턴대 연구진은 생쥐도 모니터에 보이는 다른 생쥐가 몸을 긁으면 같이 긁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첸 교수는 “인간이 다른 사람을 따라 몸을 긁는 것은 진화 과정에서 공통으로 남은 행동으로 볼 수 있다”라며 “인간은 쥐와 조금 다른 경로일 수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