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이 20대 못지않은 이른바 ‘수퍼노인(superager)’은 다른 사람보다 뇌세포가 더 크고 결함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면서 뇌가 수축하는 세월의 원리도 이들은 비켜 간다는 것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타마르 게펜 교수 연구진은 “80세가 넘어도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들인 수퍼노인들은 다른 사람보다 뇌세포가 10% 컸다”라고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신경과학 저널’에 밝혔다.
◇40대보다 뇌 기억세포가 더 많아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점차 떨어지지만, 일부는 80세가 넘어도 옛날 일을 비상하게 기억한다. 앞서 연구들은 수퍼노인들은 나이가 들어도 뇌가 수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게펜 교수 연구진은 수퍼노인들은 뇌 기억 체계를 이루는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의 신경세포가 또래보다 10% 정도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후각피질은 대뇌피질 밑에 중앙측두엽에 있다. 뇌에서 장기기억과 공간탐색을 담당하는 해마 옆에서 신호를 주고받는다.
연구진은 수퍼노인 6명이 사망한 뒤 뇌를 기증받아 분석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91세였다. 동시에 사망 당시 평균 나이가 89세인 사람 7명과 49세인 6명의 뇌를 비교했다. 이들은 모두 나이에 맞는 기억력을 보인 사람들이었다. 수퍼노인은 40년 더 젊은 사람보다도 기억력 중추가 5% 정도 더 컸다.
동시에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뇌 결함은 덜 나타났다. 뇌 신경세포는 나뭇가지 모양의 수상돌기와 기다란 밧줄 모양의 축삭돌기로 구성된다. 수상돌기가 정보를 받고 축삭돌기가 다른 세포로 전달한다. 수퍼노인은 축삭돌기의 미세소관에 있는 타우 단백질이 같은 나이에 사망한 사람이나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인 사람보다 덜 엉키고 원래 형태를 유지했다.
타우 단백질은 미세소관의 형태를 유지하는 못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들이 서로 엉기고 달라붙으면 미세소관이 못이 빠진 의자처럼 형태가 무너진다. 그러면 신경신호 전달에 문제가 생긴다.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응집되는 것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게펜 교수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타우 단백질의 응집이 수퍼노인보다 100배나 많았다고 발표했다.
결국 수퍼노인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가 다른 사람보다 크고,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결함도 적다고 볼 수 있다. 수퍼노인 연구자인 하버드 의대 알렉산드라 투로우토글로우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수퍼노인은 뇌가 여러 면에서 일반적인 성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라며 “분석 대상이 적지만 수퍼노인이 워낙 희소해 부검할 뇌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이해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게펜 교수 연구진은 앞으로 수퍼노인의 뇌에서 신경세포가 어떻게 원래 형태를 유지하는지, 이것이 뇌 기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세포 환경 차원에서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기억중추의 다른 부분도 수퍼노인과 다른 사람을 비교해볼 예정이다.
◇기억중추의 실제 작동도 20대 맞먹어
과학자들은 수퍼노인의 뇌가 실제 작동하는 모습도 젊은이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2021년 하버드 의대의 투로우토글로우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대뇌 피질(Cerebral Cortex)’에 “65세 이상 수퍼노인은 기억력 시험에서 25세 젊은이의 뇌와 같은 작동 형태를 보였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수퍼노인과 젊은이들이 특정 사진과 단어를 연결하는 기억력 시험을 치르는 동안 뇌 작동 형태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다. 뇌의 특정 영역이 활동하면 에너지 소비가 늘면서 그쪽으로 혈액 공급이 늘어난다. fMRI는 그런 곳을 불이 켜진 것처럼 환하게 보여준다.
연구진은 “fMRI 사진에서 수퍼노인의 뇌 시각중추는 신경세포들이 연결된 형태가 젊은이와 비슷했으며 또래 노인에서 나타나는 뇌 수축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Journal of Neuroscience(2022), DOI: https://doi.org/10.1523/JNEUROSCI.0679-2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