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교수는 인류 진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조상들이 피를 나눴음을 밝혀낸 과학자이다.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서로 유전자를 나눴다는 것이다.
◇현생인류 DNA에서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밝혀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 화석인류로, 40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3~4만년 전 멸종하기까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수만년 동안 공존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대규모 이주했다. 최근 두 인류는 공존하는 동안 서로 피를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가 현생인류의 DNA에 남아 있다.
페보 교수는 2010년 수만년 전 유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여성 4명의 뼈 화석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오늘날 아시아인과 유럽인은 누구나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1~2% 갖고 있었다. 개인마다 달리 가진 네안데르탈인 DNA를 모두 합치면 현생인류 전체로는 네안데르탈인 DNA의 약 20%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로 다른 인류 조상이 피를 나눈 사례는 또 있다. 페보 교수는 지난 2018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뼈 화석의 DNA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13세 소녀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데니소바인은 2008년 손가락뼈와 어금니가 처음 발견된 시베리아의 동굴 이름을 딴 고생 인류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4만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같은 호모속(屬)이다. 3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에게서 갈라진 종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유전자에 데니소바인에서 온 것도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오늘날 필리핀과 파푸아뉴기니, 호주 원주민은 유전자 중 6%까지 데니소바인과 같다고 나온다.
◇코로나와 싸우는 유전자도 네안데르탈인 것
페보 교수는 이후 줄기세포로 네안데르탈인의 미니 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니 뇌는 오가노이드로 불리는 미니 장기의 일종이다.
연구진은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초기 단계인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들었다. 페보 교수는 이 세포의 유전자를 네안데르탈인화(化)하겠다고 밝혔다. DNA 중 신경세포 발달과 관련된 유전자 부위를 네안데르탈인 DNA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이때 DNA 특정 부위를 마음대로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쓰기로 했다.
최근 네안데르탈인 신경세포 연구가 성과를 보였다. 페보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월 네안데르탈인의 미니 뇌가 오늘날 인류와 다른 발생 과정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뇌 신피질의 신경줄기세포를 관찰했더니, 네안데르탈인에서는 염색체 분리 과정에서 현생인류보다 오류가 두 배나 많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보 교수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코로나와 싸우는 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에서 왔음을 밝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페보 교수는 지난 2021년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유전자 3개가 코로나 중증 위험을 22% 낮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코로나 환자 2200여명의 유전자를 5만년과 7만년, 12만년 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화석 유전자와 비교했다. 그 결과 12번 염색체에 있는 OAS1, OAS2, OAS3이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형태이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중증으로 발전하는 위험이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OAS 유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유전물질로 RNA를 가진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효소를 생산한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에서 온 유전자가 더 강력한 효소를 생산한다고 추정했다.
앞서 연구진은 2020년 9월 네이처에 정반대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코로나 증상이 심한 사람 약 2000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3번 염색체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코로나에 감염되면 중증이 될 위험이 두 배나 높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021년 당시 오늘날 인류가 3번 염색체보다 12번 염색체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더 많이 갖고 있어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코로나를 막는 효과가 더 크다고 밝혔다. 3번 염색체에 코로나 증세를 악화시키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오늘날 8명 중 1명 꼴이다. 반면 12번 염색체에 코로나 중증을 막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유라시아와 미주 대륙에서 30%에 이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