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교수가 쓴 자서전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부키 제공

지금은 멸종한 화석인류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 인류가 더 인간답게 된 이유를 밝힌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교수가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그가 쓴 자서전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3일 화석인류의 DNA를 복원해 호미닌과 인간 진화의 게놈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해 페보 교수를 올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페보 교수는 2015년 국내에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냈다. 고대 인류 연구에 매진하는 저자가 자신의 연구 과정을 종합적으로 돌아보고 정리한 책이다.

페보 교수는 인류의 직계 조상과 네안데르탈인이 짝짓기를 했는가를 둘러싼 오랜 논쟁을 일단락 지은 학자 중 한 명이다. 페보 교수는 1997년 국제 학술지 ‘셀’에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DNA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페보 교수의 연구는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 인근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뼈 화석에서 시작됐다.

페보 교수는 1991년 네안데르탈인의 뼈에서 작은 뼛조각을 떼어내 잘게 부순 다음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세포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mtDNA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는 유전물질이다. 염기서열이 다르면 같은 종이라고 할 수 없다. 페보 교수와 동료들은 네안데르탈인의 mtDNA가 염기서열 분석 결과 이 유전물질이 현생 인류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별로 뒤지지 않았다. 그들은 현생인류와 똑같이 긴 섹스를 즐겼다

뇌 부피도 오늘날 인류의 뇌 용량보다 컸다. 사실 이런 내용은 1980년대 이후 발전한 중합효소연쇄반응(PCR)으로 불리는 유전자 증폭 기술과 유전자의 변이를 가늠하는 염기서열 분석 기술의 산물이다. PCR은 3만년이 넘은 뼈에 남아 있던 불완전한 DNA 조각에서 성공적으로 과거를 증폭해냈고 이후 범죄 조사, 실종자 추적, 코로나19 감염자 파악까지 널리 활용됐다.

그의 저서에서는 3만년이 넘은 티끌만한 뼛조각에서 ‘진화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젊은 시절 페보 교수는 상태가 양호한 뼛조각을 얻기 위해 독일과 크로아티아, 스페인을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현대인의 유전자에 오염되지 않은 완벽한 네안데르탈인 유전체(게놈)를 확보하기 전쟁 아닌 전쟁을 벌여야 했다.

페보 교수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는 최근 인류의 직계 조상과 네안데르탈인이 짝짓기했다는 수정된 결과물을 내놨다. 결론적으로 우리 몸 안에도 아주 미약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다.

페보 교수는 대학원생 시절 교수 몰래 이집트 미라의 DNA를 연구하면서 고대 DNA를 부활시키는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됐다. 시장에서 송아지의 간을 사다 인공 미라를 만들어 죽은 생물에서도 DNA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멸종 동물과 고생 인류 연구에 뛰어든다. 바싹 마르고 딱딱해진 간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대학원생은 진짜 이집트 미라로, 그 다음은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으로 관심을 돌렸다.

취약 분야인 인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나라 밖 학자들을 끌어모으는 독일의 기초학문 투자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 막스플랑크협회가 세운 진화 인류학 연구소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저자는 “선택된 사람들 모두가 독일 밖에서 왔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며 “4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하게 될 거대한 연구소를 나라 밖에서 온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맡길 정도로 국수주의적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 같다”고 썼다.

페보 교수는 지금도 ‘우리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고대 인류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이유에 대해 “모든 영장류 중에서 하필 현생인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지구의 환경을 고의적 또는 비고의적으로 바꾸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