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죄로 바위에 묶인 채 독수리의 공격을 받는 벌을 받았다. 독수리가 쪼아 먹은 간은 밤마다 다시 돋아나 형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루벤스의 그림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당당하게 독수리를 노려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인간도 프로메테우스처럼 사랑의 힘으로 심장을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의 아이토르 아귀레 교수 연구진은 “사랑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이 손상된 심장세포를 재생시킬 가능성을 동물과 세포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지난 30일 국제 학술지 ‘첨단 세포 발생 생물학(Frontiers in Cell and Developmental Biology)’에 밝혔다.
◇사랑 호르몬이 심근세포 재생 촉진
옥시토신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돼 자궁의 수축을 일으키거나 모유가 나오는 것을 촉진한다. 남성호르몬 생산과 정자 이동에도 관여한다. 특히 배우자와의 유대감을 높여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린다. 대초원 들쥐 암수가 평생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것도 옥시토신 덕분이라고 알려졌다.
연구진은 실험동물인 제브라피쉬와 인체 세포 대상 실험에서 옥시토신이 심장외막의 줄기세포를 중간층인 심근으로 이동시켜 심근세포가 되도록 촉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근세포는 심장 수축을 일으킨다. 연구가 발전하면 호르몬 치료로 심장마비 환자의 손상된 심장조직을 재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제브라피쉬는 몸길이 4~5㎝의 민물고기로 흰 몸통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어 얼룩말(zebra) 같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제브라피쉬는 인간과 유전자가 거의 같아 사람의 질병을 연구하는 데 애용된다.
특히 제브라피쉬는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처럼 심장을 4분의 1이나 잃어도 살 수 있다. 심장외막의 일부 세포가 줄기세포 형태로 바뀌어 다시 심근세포를 만들기 때문이다. 제브라피쉬가 심장마비를 당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이 심장마비에 걸리면 심근세포가 집단 사멸하고 재생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제프라피쉬가 심장마비와 같은 상태에 빠지도록 심장을 냉동시켰다. 3일이 지나자 뇌에서 옥시토신을 만드는 유전자가 평소보다 20배나 더 많이 작동했다.
연구진은 옥시토신이 제브라피쉬의 심장외막으로 가서 결합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심장외막의 일부 세포가 줄기세포 상태로 바뀌고 중간층으로 이동했다. 줄기세포는 나중에 심근세포와 혈관으로 자라 손상된 조직을 대체했다.
◇인체 세포 실험에서도 효과 확인
사람도 옥시토신의 심장 재생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인체 세포 실험에서 다른 14가지 신경호르몬과 달리 옥시토신만 심장외막 유래 줄기세포를 이전보다 2배나 많이 생성시켰다. 반면 옥시토신을 분비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바꾸자 심장외막 유래 줄기세포의 재생 효과가 사라졌다.
연구진은 옥시토신이 유도한 줄기세포가 세포의 발생과 분화, 이동을 조절하는 신호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귀레 교수는 “이번 결과는 진화 과정에서 옥시토신의 심장외막 줄기세포 생성 능력이 인간에도 상당 부분 보존됐음을 보여준다”라며 “옥시토신이 환자 치료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만큼 심장병 환자 치료에도 쉽게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실제 심장병 환자에서 옥시토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또 인체에서 단기간에 그치는 옥시토신 효과를 약물로 더 오래 유지되도록 하는 방법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