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have impact(충돌했습니다)”
27일 오전 8시 15분 30초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운영하는 나사TV 아나운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던 중계화면에는 소행성 ‘디모르포스(Dimorphos)’의 회색 표면과 돌덩어리들만 가득했다. 나사가 쏘아올린 우주선 ‘다트(DART)’에 설치된 중계 카메라는 고장난듯 화면 대부분이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우주선이 소행성에 충돌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보던 나사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우주선과 소행성이 충돌한 건 ‘사고’가 아닌 ‘실험 성공’이었다. 나사는 지난 2018년 8월 이번 실험을 진행해도 좋다는 최종 승인을 내렸다. 처음부터 소행성에 충돌시키기 위해 우주선을 쏘아 올렸다는 뜻이다.
이번 실험은 지구를 향해 오는 소행성에 우주선을 충돌시켜 궤도를 바꾸면, 소행성이 지구를 빗겨나갈 거란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 진행됐다. 우주선 이름인 DART는 ‘쌍소행성 궤도 수정 시험(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의 영문 약자다. 다트는 지난해 11월 24일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려 우주로 발사된 뒤 308일 만에 목표 소행성에 충돌했다.
소행성 충돌 장면은 한국 측 망원경에도 잡혔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이스라엘 미츠페라몬 WISE 천문대에 설치한 ‘우주물체 전자광학 감시네트워크 0.5m 망원경’은 다트가 소행성과 충돌한 뒤 먼지가 발생하는 장면을 뚜렷하게 담아냈다.
그동안 다트는 태양전지판으로 만든 전기로 이온을 분사해 비행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응용물리학 연구소가 만든 최첨단 항법장치를 이용, 지구로부터 1100만㎞ 떨어진 소행성 디모르포스까지 인간의 지원 없이 스스로 날아갔다. 우주선을 비롯한 각종 장치들을 개발하는 데 총 3억3000만 달러(약 4700억원)가 쓰였다.
빌 넬슨 나사 국장은 “이번 실험 성공은 ‘과학소설(SF)’을 ‘과학 사실’로 바꾼 사건”이라며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에 참여한 엔지니어인 엘레나 애덤스 박사는 “인류 사상 첫 지구 방위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하는 건 더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나사 소속 과학자인 토마스 스태틀러 박사는 “지구를 소행성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정책 입안자가 과거에는 별로 없었다”며 “그러나 최근 공룡이 멸망했을 당시 지구와 충돌했던 소행성만큼 거대한 것들이 지구 주변에서 발견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나사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지름이 140m 이상인 소행성이 지구 주변에 2만6000여개 정도 있는 걸로 추산하고 있다. 이 정도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대도시 하나가 초토화된다고 한다. 지름 1㎞ 소행성은 전 인류 멸종, 지름 10㎞ 소행성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없앨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험으로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한다. 김명진 천문연 선임연구원은 “우주선을 소행성에 충돌시켜 궤도를 바꾸는 실험은 지금껏 이론적 계산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진행돼왔다”며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제 실험이 이뤄진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사는 이번 충돌로 디모르포스의 공전 궤도가 전보다 안쪽으로 작아지면서 공전 시간이 10~15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비롯한 충돌 이후 상황은 이탈리아 우주국의 큐브샛 ‘리차큐브(LICIACube)’가 중계한다. 리차큐브가 촬영한 영상은 하루에서 이틀 뒤 지구에 도착한다. 허블 우주망원경,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도 동원된다
한국도 소행성 충돌로 인한 변화를 관측하는 데 힘을 보탠다. 천문연은 현재 보현산천문대의 지름 1.8m 망원경, 미국 애리조나주 레몬산천문대의 1.0m 망원경, 소백산천문대의 0.6m 망원경, 우주물체 전자광학 감시네트워크(OWL net)의 0.5m 망원경을 이용해 디모포스의 궤도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충돌로 생긴 먼지가 약 2주 뒤 가라앉으면 집중적으로 관측을 수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