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는 감정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먹이를 만나 기쁠 때(왼쪽)와 가시에 찔려 통증을 느낄 때(오른쪽) 표정이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으로 생쥐의 표정에 담긴 통증 정도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인공지능(AI)이 말 못 하는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험동물이 통증을 느낄 때 나타나는 표정을 읽어낸 것이다. 인공지능 독심술은 동물 실험에서 통증 치료제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더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나아가 동물의 울음소리를 이해하는 인공지능과 결합하면 가축에게 적합한 사육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생쥐 표정 보고 통증 정도 파악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마크 질카 교수 연구진은 최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인공지능으로 생쥐가 얼굴을 찡그린 정도를 파악해 사람과 비슷한 정확도로 통증 점수를 매겼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통증 치료제 실험에 많이 쓰는 검은 털 생쥐로 실험을 진행했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개복수술(開腹手術)을 포함해 다양한 조건에서 나타나는 생쥐의 표정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다.

먼저 사람이 생쥐 동영상 270편에서 생쥐의 눈과 코, 귀, 수염이 나타난 사진 7만여 장을 보고 통증 점수를 0에서부터 8까지 매겼다. 생쥐가 통증을 느끼면 눈을 찡그리고 코를 부풀리며 귀는 뒤로 간다. 수염 모양도 바뀐다.

통증에 따른 쥐의 표정 변화. 왼쪽줄은 통증이 0인 상태이고 가운데는 중간 정도, 오른쪽은 심한 상태이다. 통증이 심해지면 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코를 부풀리며, 귀는 뒤로 빼고 수염 위치도 바뀌었다./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은 통증 판독 결과를 ‘페인페이스(PainFace)’로 이름 붙인 인공지능에 입력했다. 인공지능은 수작업으로 만든 통증 판독 정보를 통해 생쥐 표정과 통증 사이의 연관 관계를 스스로 파악했다. 기계 학습을 거친 인공지능은 처음 보는 생쥐의 표정을 보고 실제 연구원과 비슷하게 통증 점수를 매길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통증 판독 속도는 사람보다 100배나 빨랐다. 대규모 동물 실험 결과를 해독할 때 인공지능이 안성맞춤인 셈이다. 영국 레딩대의 마리아 마이아루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페인페이스 인공지능을 쓰면 수작업 통증 판독의 오류를 줄이고 여러 연구실에서 나온 실험 결과를 쉽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통 느끼는 신경세포와 표정 일치

진화 이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은 150여 년 전 동물의 표정이 감정을 보여주는 창과 같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주장은 인공지능 실험을 통해 신경세포 차원에서 입증됐다. 지난 2020년 독일 막스플랑크 신경생물학연구소의 나딘 고골라 박사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뇌 신경세포와 얼굴 표정이 연관돼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연구진은 생쥐가 얼굴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설탕물이나 소금물을 혀에 주거나 꼬리에 약한 전기를 가하는 등 감정을 유발하는 다양한 자극을 줬다. 생쥐는 설탕물이 입에 닿으면 코를 입 쪽으로 내리고 귀를 펴고 턱을 위로 올렸다. 기쁜 표정을 지은 것이다.

쥐가 공포를 느끼면(아래) 평소(위)와 다른 표정을 짓는다. 공포에 빠진 쥐에서 가장 표정 변화가 심한 곳은 붉은색으로 표시된 코와 귀, 수염 등이었다./네이처

반면 고통을 느끼면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뒤로 당기면서 뺨을 부풀렸다. 연구진은 생쥐 표정 사진을 인공지능에게 학습 시켜 감정을 판독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연구진은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신경세포에 붙이는 광유전학 실험을 진행했다. 빛으로 특정 감정과 관련된 신경세포를 자극하자 그 감정에 꼭 맞는 표정이 나타났다. 인공지능이 동물의 표정만 보고도 뇌 차원에서 처리되는 감정을 파악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울음소리로 스트레스 받는 돼지, 닭 가려내

인공지능은 표정에 앞서 울음소리로 먼저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 홍콩 시티대의 앨런 맥엣리고트 교수 연구진은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 인터페이스 학회 저널’에 인공지능으로 닭장에서 나는 소리 가운데 스트레스를 받는 닭의 울음소리를 97%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은 환경 소음은 물론, 다른 닭이 내는 소리에도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받은 닭이 내는 소리만 가려냈다.

인공지능이 가축의 울음소리에 담긴 감정을 해독하면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전 세계에서 닭 330억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대부분 좁은 닭장에서 밀집 사육된다. 인공지능은 이런 환경에서 닭이 받는 스트레스를 정확히 감지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으로 닭과 돼지의 울음소리를 분석해 스트레스 여부를 판독해냈다. 이는 가축의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Pixabay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엘로디 브리퍼 교수 연구진은 지난 3월 같은 방법으로 돼지의 울음소리를 분석해 감정 상태를 92% 정확도로 읽어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돼지 411마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녹음한 파일 7414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어린 돼지가 형제를 만나거나 어미 젖을 빨 때처럼 긍정적인 감정일 때는 낮은 소리로 짧게 꿀꿀거리지만, 낙인을 찍거나 거세를 당하는 공포 상황에서는 꽥 하고 높은 소리를 냈다. 인공지능 독심술과 번역기가 결합하면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이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