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만 여겼던 페트병이 고에너지 레이저를 맞고 다이아몬드로 변신했다. 천왕성, 해왕성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 얼음 행성에서 일어나기 힘든 열과 자기장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지구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산업용 다이아몬드를 손쉽게 생산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독일 로스톡대의 도미니크 클라우스 교수와 미국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의 지그프리드 글레즈너 박사 공동 연구진은 지난 3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플라스틱인 페트(PET)에 고에너지 레이저를 쏘아 이전보다 낮은 압력에서 미세 다이아몬드를 생성시키는 데 성공했다”라고 밝혔다.
◇지구핵 5분의 1 압력에서 다이아몬드 생성
페트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의 약자로, 탄소와 수소, 산소로 이뤄진 고분자 물질이다. 음료수 병에 많이 쓰인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정사면체 격자 구조로 연결된 결정이다. 탄소가 어디에서 왔든 같은 격자 구조를 만들면 다이아몬드로 변신할 수 있다.
연구진은 페트에 고에너지 레이저를 쏘아 섭씨 3200~5800도까지 온도를 올렸다. 레이저가 촉발한 충격파는 압력을 72기가파스칼까지 높였다. 이는 지구 핵 압력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실험 결과 페트의 탄소에서 수소와 산소가 떨어지면서 수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다이아몬드들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물 분자에서 수소 이온이 떨어져 나와 초이온수가 생성됐다. 초이온수에서는 수소 이온이 자유롭게 떠다녀 일반 물보다 전류가 더 잘 흐른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앞서 2017년 ‘네이처 천문학’에 고온, 고압 환경에서 플라스틱이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실험은 그때보다 더 낮은 압력에서 성공했다. 쓰레기로만 생각했던 페트병이 연마제나 전자기기, 센서, 의료기 등으로 쓰이는 산업용 다이아몬드로 변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거대 얼음 행성에 내리는 다이아몬드 비
특히 페트는 이전에 사용한 재료와 달리 산소를 갖고 있다. 천왕성과 해왕성 같은 거대 얼음 행성도 탄소, 수소와 함께 산소를 대량 갖고 있다. 클라우스 박사는 “페트는 얼음 행성처럼 탄소와 수소, 산소가 잘 균형을 이루고 있다”라며 “산소는 페트에서 탄소와 수소가 더 잘 분리되도록 촉진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글레즈너 박사는 “다이아몬드 생성이 지금껏 생각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생성될 수 있다면 탄화수소가 있는 천왕성과 해왕성이나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 내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만약 해왕성의 맨틀에서 다이아몬드가 생성되고 마치 비가 내리듯 핵으로 가라앉는다면 내부에서 다른 물질과 부딪히면서 마찰열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는 얼음 행성인 해왕성이 왜 온도가 높은지 설명할 수 있다. 또 천왕성의 자기장도 다이아몬드 생성 과정에서 나오는 초이온수가 전류를 잘 흘린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연구진은 외계 행성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 얼음 행성을 연구하는 데 이번 실험 결과를 적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발견한 외계 행성에서 가장 많은 종류는 35%를 차지하는 해왕성형이다. 우리 태양계의 맨 바깥에 있는 천왕성이나 해왕성과 같이 얼어붙은 거대 행성이다. 다음은 31%를 차지하는 초지구형과 30%의 가스형 거대 행성이다.
아울러 페트병에서 만들어지는 미세 다이아몬드를 수거해 산업용으로 활용할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글레즈너 박사는 “이전에는 워낙 고압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다 보니 나중에 서로 부서지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이번에 이전보다 낮은 압력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회수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