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극한 폭염 등 기후 위기를 만들었다.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의 빈도와 강도, 지속 기간을 키우고 있다."
리처드 히드(Richard Heede) 기후책임연구소(CAI) 소장은 세계 최대 석유·가스·석탄 기업의 역사적 탄소 배출량을 추적한 '탄소 메이저(Carbon Majors)'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이다. 그의 연구는 오늘날 기후 피해 책임을 기업에 묻는 소송의 핵심 근거가 되고 있다. 히드 소장은 폭염 피해 역시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화석연료 기업의 배출과 연결된 경제적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11개 주요 탄소 생산 기업 등이 1990~2020년 폭염으로 28조달러(약 4경880조원)의 경제적 손실에 책임이 있다는 연구를 근거로, 기후 피해 역시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상당 부분이 소수 기업에서 나왔다는 탄소 메이저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기업은 자사 제품의 생산과 사용에서 비롯되는 해로운 결과를 피하거나 줄일 의무가 있다. 석유·천연가스·석탄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사가 판 화석연료 사용이 우리가 의존하는 안정적 기후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수십 년간 알고 있었다. 책임을 물으려면 각 기업이 해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얼마나 배출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2003년 탄소 메이저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처음엔 엑손모빌의 전신 스탠더드오일부터 계산했고 이후 최대 생산자 90곳으로 넓혔다. 그 첫 작업에 11년이 걸렸고, 데이터베이스는 이제 180개 주체로 확대됐다."
올여름 유럽 일부 지역의 40도를 넘는 폭염은 단순한 자연 현상인가, 누군가가 만든 재난인가.
"과학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의 빈도와 강도, 지속 기간을 키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폭염으로 연간 약 5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폭염뿐 아니라 극한 강수와 홍수, 태풍의 파괴력, 해양 온난화와 산호 백화, 산불, 가뭄, 수력발전 감소, 빙하 융해 그리고 필연적으로 해수면 상승까지 이어진다. 인류가 이 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아직 바로잡을 수 있다'."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영국의 생물학 해설자이자, 환경운동가다. 기후 위기 대응의 상징적 목소리로 꼽힌다.
특정 기업이 폭염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정말 계산할 수 있나.
"기업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전 세계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환산한 뒤, 2000년 이후 발생한 213건의 폭염을 대상으로 각 기업이 폭염 발생 확률과 강도의 증가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추정했다. 최신 기후 관측 자료와 모델을 활용한 결과, 180개 탄소 메이저에 귀속된 배출량이 폭염 강도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폭염으로 잃은 노동시간과 농업 피해를 돈으로 계산하면 청구서는 얼마나 되나.
"연구자들은 111개 주요 탄소 생산 기업과 기관 등이 1990~2020년 폭염으로 28조달러의 경제적 손실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 더 넓게 보면 2050년까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 손실이 예상된다. 평균기온이 3도 상승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2025~2050년 누적 99조달러(약 14경4540조원) 손실을 상정했는데, 그중 화석연료 배출 몫에서 23조달러(약 3경3580조원)를 정부·소비자, 탄소 연료 생산자 세 주체에 똑같이 배분했다. 이런 분담금 제도가 실제 도입된다면, 그 재원은 '손실·피해 기금(Loss & Damage Fund)'에 넣어 저탄소 전환에 쓸 수 있다. 다만 현실에서 기업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배상하지 않을 것이다."
석유 회사도 폭염 피해를 배상하게 될까.
"일부 소송은 배상을 끌어내거나 기업의 생산·배출 감축을 강제하는 데 성공할 것으로 본다. 1986년 이후 62개국에서 3600건이 제기됐고, 2025년에만 249건이 새로 접수됐다. 미국 주·지방정부가 석유·가스 기업을 상대로 낸 36건 중 다수는 진행 중이다. 진전을 보이지만 아직 배상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 화석연료 로비는 정치권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연간 직접 보조금을 7300억달러(약 106조5800억원)로 본다. 제품의 진짜 비용을 숨기면 과잉투자와 과잉소비로 이어진다. 화석연료 보조금을 대폭 줄여야 한다."
기업은 실제로 연료를 태우는 건 소비자라고 항변한다.
"실제 연소는 개인과 주택 소유자부터 해운사와 항공사까지 전 세계 소비자가 한다. 그러나 대형 화석연료 기업은 이르면 1960년대부터 자사의 생산과 사용이 기후 안정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아야 했다. 엑손모빌 과학자는 1970~80년대에 기후 추세를 놀랄 만큼 정확히 모델링했고 그 결과는 경영진에게 보고됐다. 셸도 1988년 내부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해마다 수천억달러를 탐사와 생산에 쏟고 부정과 지연의 여론전에 돈을 댔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배출량 절반이 1994년 이후에 나왔다. 우리는 친환경 에너지전환에 쓸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한국은 무엇을 가장 경계해야 하나.
"화석연료 수입 의존이다. 특히 중동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해외 석탄에 대한 의존은 공급망과 가격 측면에서 모두 위험하다. 한국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속해야 한다. 현재 전력의 약 11%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20% 목표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뒤 극한 폭염의 비용은 결국 누가 치르게 될까.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농업과 축산, 건설 현장의 야외 노동자는 극심한 더위 속에서 일해야 하지만 냉방이나 노동자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 건강 피해와 사망 위험도 가장 크다. 반면 부유층은 더위로부터 상대적으로 보호받는다. 국가와 지방정부도 냉방 시설과 기후 적응 인프라 구축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결국 화석연료 생산자가 그 부담을 나눌지는 앞으로 법과 정책이 결정할 문제다."
Plus Point
극한 이상기후는 화석연료 기업 책임 커… '오염자 부담'의 과학
리처드 히드 기후책임연구소(CAI) 소장은 2003년부터 11년에 걸쳐 글로벌 석유·가스·석탄 기업의 기업 보고서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서류를 참고해 기업들의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분석했다. 그는 산업화 이후 배출된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약 70%가 단 90개 기업(현재 180개로 확대)에서 나왔다는 결론을 냈다. 개인의 습관이나 국가의 통계 뒤에 흩어져 있던 책임을 기업 단위로 다시 묶은 것이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오염자 부담(polluter pays)' 원칙을 법정에서 쓸 수 있는 수치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특정 기업의 배출이 폭염 피해로 이어졌음을 입증할 수 없어 줄줄이 패소했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팀의 2025년 '네이처' 논문은 111개 기업의 배출을 극한 폭염의 경제 손실과 연결하며 그 벽을 허물었다. 상위 10개 사가 손실 절반을, 사우디 아람코와 가즈프롬이 각각 2조달러(약 2920조원) 이상을 유발한 것으로 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