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가는 꿀벌.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사는 잡종 꿀벌은 양봉 꿀벌보다 치명적인 진드기인 바로아 응애에 덜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Damien Tupinier with unsplash

토종(土種)이 좋다는 말은 미국에도 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부터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정착한 잡종(雜種) 꿀벌은 양봉 꿀벌(학명 Apis mellifera)보다 기생충에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양봉 꿀벌 군집이 62%까지 사라져 꿀벌에 꽃가루받이를 의존하는 농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현지 생태계에 적응한 토종 꿀벌이 농업을 살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통합벌연구센터의 보리스 베어(Boris Baer) 교수 연구진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꿀벌 군집 236개를 추적 관찰한 결과 캘리포니아산 잡종 여왕벌이 이끄는 군집은 양봉 꿀벌 군집보다 바로아 응애 수가 68% 적었다"고 지난 9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화학 방제 필요성, 토종이 5배 적어

최근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 농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꿀벌 군집 붕괴는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2021년 1분기 꿀벌 78억마리가 사라지면서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꿀벌이 사라진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기후 변화와 서식지 감소, 농약, 기생충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바로아 응애이다.

바로아 응애는 다른 진드기와 달리 체액 대신 지방을 먹는다. 꿀벌에게 지방은 사람의 간과 같다. 면역력을 유지해 겨울을 나고 살충제를 이겨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바로아 응애는 꿀벌에게 치명적이다. 심지어 날개 기형과 급성 마비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들까지 퍼뜨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사는 잡종 꿀벌은 나무에 집을 짓는다(왼쪽). 잡종은 양봉 꿀벌보다 치명적인 진드기인 바로아 응애에 덜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른쪽 사진에서 하얀 꿀벌 애벌레 등에 붙은 붉은 점이 바로아 응애이다./UC리버사이드

조사 결과 캘리포니아산 잡종 꿀벌도 바로아 응애에 감염됐지만 수입산 양봉 꿀벌보다는 훨씬 덜했다. 꿀벌 군집에서 일벌 1000마리 당 3마리가 감염되면 화학 방제를 하는데, 캘리포니아 토종 꿀벌은 양봉 꿀벌보다 이 기준치를 넘는 비율이 5배 낮았다. 토종 꿀벌은 주로 나무에 집을 짓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꿀벌들은 아프리카, 동유럽, 중동, 서유럽 꿀벌들이 섞인 잡종이다.

바로아 응애는 꿀벌 애벌레에 감염된다. 연구진은 잡종 꿀벌과 양봉 꿀벌 애벌레에 바로아 응애를 감염시키는 실험을 했다. 바로아 응애는 양봉 꿀벌 애벌레를 더 많이 찾았다. 특히 부화한 지 7일 된 애벌레에서 그 차이가 가장 컸다. 이때가 바로아 응애가 애벌레를 가장 많이 공격하는 시기이다. 논문 제1 저자인 제네시스 청-에차베스(Genesis Chong-Echavez) 연구원은 "바로아 응애에 대한 저항 메커니즘이 유전자에 내재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현지 생태계에 적응한 야생 꿀벌이 농업을 지킬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꿀벌의 안전은 인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꽃가루받이를 벌에 의존하고 있다.

UC리버사이드 연구진은 바로아 응애가 토종 꿀벌 애벌레를 덜 찾게 하는 유전자와 행동, 화학 신호를 조사할 계획이다. 기생충을 물리치는 유전자가 확인되면 바로아 응애에 강한 꿀벌 품종을 만들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등에 진드기 일종인 바로아 응애(붉은색)가 달라붙은 꿀벌.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꽃가루받이를 벌에 의존하고 있다. 바로아 응애는 꿀벌의 건강을 해쳐 농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미 농무부 ARS

◇농업 지킬 토종 꿀벌, 양봉 꿀벌에 밀려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이렇게 고마운 야생 꿀벌을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업 생산량을 높이려고 꽃가루받이용으로 도입한 양봉 꿀벌이 토종 꿀벌이 먹을 꽃가루를 싹쓸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연구진은 영국 곤충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곤충 보전과 다양성'에 발표한 논문에서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개화(開花) 첫날 양봉 꿀벌이 꽃가루의 약 80%를 가져간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캘리포니아 남부에 흔한 꽃 3종을 대상으로 꿀벌이 채집하는 꽃가루 양을 계산했다. 덩치가 큰 양봉 꿀벌이 엄청난 속도로 꽃가루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700종이 넘는 토종 꿀벌에게는 꽃가루가 거의 남지 않는다. UCSD 연구진은 "양봉 꿀벌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지만, 원산지가 아닌 생태계에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서 연구에서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꽃을 찾는 벌의 90%가 유럽꿀벌이나 서양꿀벌로도 불리는 양봉 꿀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만약 양봉 꿀벌이 가져가는 꽃가루와 꿀을 토종 꿀벌에게 공급했다면 개체 수는 현재보다 약 50배 더 많았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산했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에서 농약 남용으로 새 먹이인 곤충이 사라지면서 봄이 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봄에 꿀벌 소리마저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토종 꿀벌과 양봉 꿀벌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6-45759-9

Insect Conservation and Diversity(2025), DOI: https://doi.org/10.1111/icad.12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