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60간지 중 42번째인 을사년(乙巳年)이다. ‘을’이 색상 중 청색을 의미한다고 해서 푸른 뱀의 해로 불린다. 해 이름이야 멋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뱀 자체가 탐탁지 않다. 다리 없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기어 다니는 외형도 징그럽지만, 치명적인 독도 문제다.
과학자들이 누구나 싫어하는 뱀을 오히려 구하러 나섰다. 멸종위기에 몰린 뱀을 지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뱀은 어류나 설치류를 잡아 먹고, 반대로 대형 조류나 포유류에게는 먹이가 된다. 먹이사슬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뱀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따금 뱀이 도심에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건 그만큼 산림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2025년 뱀의 해를 맞아 제주도의 비바리뱀 구조 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유정우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전임연구원은 “야생에서 포획한 비바리뱀의 분변을 확보해 비바리뱀이 어떤 먹이를 먹는지 먹이원을 연구하고, 소형 발신기를 비바리뱀에 부착하고 방사해 비바리뱀의 공간 이용 연구도 수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뱀이 모두 11종 서식한다. 쇠살모사와 살모사·까치살모사·유혈목이 등 4종은 독사로 분류되고 나머지는 독이 없다. 뱀 몇 종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2m까지 자라는 구렁이는 현재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돼 있어 아무리 크기가 커도 일반인이 야생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구렁이와 달리 이름이 생소한 비바리뱀도 마찬가지다.
비바리뱀은 중국과 대만·홍콩·베트남·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주로 발견된다. 국내에서는 1981년에 한라산 성판악 근처에서 처음 발견됐다.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검은 줄무늬가 길게 늘어져 있는데 이 모습이 댕기머리를 한 처녀와 닮았다고 해서 처녀의 제주 방언인 ‘비바리’를 따서 비바리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립생태원은 2019년 생물종 멸종으로 인한 생태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멸종위기종 증식 기술 개발과 원종확보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그 안에 비바리뱀이 포함됐다. 사람 눈에 띄고 30년이 지나자 멸종위기로 내몰렸다. 환경부는 2012년에 비바리뱀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했다.
비바리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중산간 일대에서만 발견됐다. 유정우 전임연구원은 “비바리뱀은 제주도의 600m 이하 초지대와 관목림이 혼재하는 곳에 산다고 알려졌고, 줄장지뱀이나 도마뱀, 대륙유혈목이 새끼 등 작은 파충류를 주로 먹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은 제주도 중산간 일대가 개발되면서 비바리뱀 개체 수가 급감했다. 서식지 일대가 개발되면서 비바리뱀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은신처와 먹이가 사라진 결과이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제주도 현지 조사원을 고용해 야생 비바리뱀 확보에 나섰다. 비바리뱀은 보통 4~5월에 짝짓기를 하고, 6~8월에 알을 낳아 번식한다. 비바리뱀이 활동하는 4~10월 사이에 제주도 초지에서 직접 자연 상태의 비바리뱀을 확보해 주요 서식지 환경과 산란, 부화 기간 등을 조사해 비바리뱀의 생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현지 조사원은 모두 4차례에 걸친 제주도 현지 조사 끝에 비바리뱀 한 마리를 포획해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데려왔다. 유 전임연구원은 “그동안 제주도에서 비바리뱀이 출현하는 지점과 개체 수 산정을 위한 연구와 조사를 진행했다”며 “비바리뱀이 어떤 서식환경을 선호하고 생존에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홍콩과 비교해 비바리뱀의 잠재 서식지를 예측하는 연구도 진행했다. 대만과 홍콩은 제주도처럼 거대한 섬 지형이면서 아열대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보다 비바리뱀이 많아 비바리뱀의 생태를 연구하기에도 적합하다. 국립생태원은 대만과 홍콩의 비바리뱀 출현 지점을 분석한 뒤 이를 제주도에 적용하는 식으로 잠재적인 서식지를 찾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렇게 분석한 결과, 비바리뱀은 평균 384m 고도에 위치한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었다. 서식지 평균 기온은 섭씨 20도로, 최저 6도, 최고 33도 범위였다. 연구진은 “비바리뱀이 출현한 지점의 환경요인 특성 값을 국내에 반영한 결과, 제주도를 비롯해 남해안과 서해안 지역, 경북 내륙 일부 지역에 비바리뱀 분포가 가능한 것으로 예측됐다”며 “농경지에서 산림으로 이어지는 지역이 서식 가능 지역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은 당초 2027년까지 비바리뱀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 연구자들은 지원 부족으로 그 안에 성과를 내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유 전임연구원은 “복원 연구는 종(種)의 생태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장기간의 조사와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이를 수행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이 제한적이고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무선추적기법과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연구나 서식지 복원 사업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멸종위기종 복원과 개발이 충돌하는 것도 문제다. 제주도에서는 제2공항 건설을 비롯해 중산간 일대에 대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가 2019년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을 때 공항 건설 예정지에서 비바리뱀이 발견됐다. 뱀을 복원하자고 개발을 중지하라고 하면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멸종위기 종을 보호하면 전체 생태계를 유지해 장기적으로 제주도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유 전임연구원은 “비바리뱀 복원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단순히 개체 수 증가뿐만 아니라, 멸종위기종에서 벗어나, 제주 생태계를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바리뱀은 먹이사슬의 중간 소비자로서 새와 육식 포유류 같은 상위 포식자와 소형 양서류, 곤충 같은 하위 생물 간의 균형을 유지한다”며 “비바리뱀 복원은 특정 종의 과도한 번식을 억제하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며 건강한 서식지를 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