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솟구치는 혹등고래. 혹등고래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민 프로젝트 '해피 웨일' 데이터베이스에서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최소 1만3000㎞를 이주한 혹등고래가 발견됐다./NOAA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최소 1만3000㎞를 이동한 혹등고래가 발견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혹등고래의 이주 경로 중 최장거리다. 거대한 몸을 이끌고 먼 거리를 헤엄쳐야 했던 이 혹등고래에 생태학자들의 관심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탄자니아 바자루토 과학센터 연구진은 지난 11일 국제 학술지 ‘로얄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에 역대 최장 거리를 이주한 혹등고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혹등고래는 몸 길이가 최소 12m에 달하는 초대형 해양 동물이다. 큰 몸집뿐 아니라 육상과 바다의 모든 포유류 중 가장 먼 거리를 이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혹등고래는 번식지를 찾기 위해 매년 먼 거리를 이동한다. 여름철이면 극지방으로 이동해 사냥을 하고, 겨울이 되면 적도 인근에서 번식을 한다. 혹등고래가 번식을 위해 이주하는 거리는 6000㎞에 달한다.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수집한 혹등고래 데이터를 모으는 시민과학 프로젝트인 ‘해피 웨일(Happy Whale)’에서 평균 이주 거리의 2배를 뛰어넘는 1만3000㎞를 이주한 혹등고래를 찾아냈다.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이어지는 최소 이주 경로로, 실제 혹등고래가 이동한 거리는 이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논문 교신 저자인 예카테리나 칼라시니코바(Ekaterina Kalashnikova) 박사는 “역대 혹등고래 중 가장 먼 이주 거리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이 혹등고래가 먼 거리를 헤엄쳐 이주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번 혹등고래는 2017년 콜롬비아 인근 태평양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5년이 지난 2022년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 인근 인도양에서 다시 발견됐다. 연구진이 5년이 지나 전혀 다른 곳에서 촬영한 사진 속 혹등고래가 같은 개체라고 확신할 수 있던 것은 꼬리 덕분이다.

탄자니아 바자루토 과학센터 연구진이 혹등고래 데이터베이스 '해피 웨일'에 수집된 꼬리 데이터를 분석해 1만3000㎞ 이상 이주한 혹등고래를 찾았다. 2017년 콜롬비아 인근 태평양에서 촬영된 고래(왼쪽·가운데)는 2022년 탄자니아 잔지바르 인근 인도양에서 발견됐다(오른쪽)./로얄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

혹등고래는 꼬리 바닥에 독특한 색소를 갖고 있다. 이 색소의 분포를 분석하면 어떤 고래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신원을 파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해 혹등고래 꼬리에 있는 패턴을 분석해 혹등 고래의 이주 경로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진이 이 혹등고래에 주목한 이유는 긴 이주 거리뿐만이 아니다. 혹등고래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에는 번식지가 두 곳 있다. 번식지를 찾으려 했다면 먼 거리를 이동했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혹등고래가 기후변화로 새로운 사냥터를 찾기 위해 이주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존 서식지에 사는 크릴새우의 외형이 바뀌면서 사냥이 어려워지자 먹이를 찾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고래잡이 포경이 금지되면서 개체 수가 급증해 새로운 번식지를 찾기 위한 탐험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

혹등고래는 한때 무분별한 어획으로 멸종위기 직전까지 몰렸다. 18세기 포경 산업이 성행하면서 30만마리 이상이 포획됐다. 혹등고래의 주요 서식지인 남대서양에서는 개체 수가 1830년 2만7000마리에서 1950년대 중반 450마리까지 감소했을 정도다.

칼라시니코바 박사는 “혹등고래가 왜 먼 거리를 여행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도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와 개체수 회복으로 인한 영향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Royal Society Open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098/rsos.241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