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최대 10일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만약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생존 기간은 40일로 4배 가량 늘어난다. 물은 동물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그런데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어떤 음식을 먹지 않고도 수개월을 살아남는다. 부족한 열량은 겨울잠에 들기 전 먹이를 잔뜩 먹어 지방으로 채워두면 되지만, 물은 보관할 수 있는 양도, 기간도 한정적이다.
동물도 오랜 기간 물을 먹지 않으면 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을 크게 느낀다. 이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하지만 실제 동물들은 별다른 갈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들은 그 비결을 궁금해 해왔다.
엘레나 그라체바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2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동면 중인 열세줄땅다람쥐가 뇌의 신경 활동을 억제해 겨울잠을 자는 동안 갈증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열세줄땅다람쥐는 북미 초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람쥐 종(種)이다. 몸 길이는 약 20㎝이며 몸무게는 100~270g 정도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무늬다람쥐와 비슷한 몸집을 갖고 있다. 등에는 13줄의 줄무늬를 갖고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열세줄땅다람쥐는 다른 다람쥐들과 마찬가지로 이른 겨울잠에 든다. 다람쥐들은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5개월간 겨울잠을 잔다. 이 기간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도 버틴 후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먹이와 물을 찾으러 나간다.
연구진은 열세줄땅다람쥐가 5개월간 갈증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해 우선 겨울잠을 자는 동안 호르몬이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했다. 호르몬은 갈증을 유발하는 주요 요소다. 뇌하수체가 분비하는 항이뇨호르몬(ADH)과 신장이 분비하는 안지오텐신이 대표적이다. 열세줄땅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는 동안 갈증을 느끼지 않으려면 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돼야 한다.
분석 결과, 겨울잠을 자는 열세줄땅다람쥐는 갈증을 유발하는 호르몬의 분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열세줄땅다람쥐의 갈증을 없애는 또다른 요소가 있을 것으로 보고 뇌 신경 활동에 주목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뇌 신경은 뇌와 혈액, 뇌척수액을 연결하는 ‘뇌실주위기관’이었다. 뇌실주위기관은 뇌로 들어오는 불순물을 차단하는 ‘혈액-뇌 장벽(BBB)’가 없는 지역으로 혈액 내 물질을 직접 감지하며 체액과 수분의 균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뇌실주위기관을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활동성 변화를 측정한 결과, 겨울잠을 자는 동안 활동성이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실주위기관이 갈증을 느끼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신경을 억제하면 갈증을 느끼는 강도가 약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생리적인 기능을 조절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겨울잠을 자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물을 마시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면 극한 환경에서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령 달이나 화성처럼 물이 귀한 지역에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신경을 조절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연구진은 “뇌의 순환을 담당하는 기관이 갈증을 조절한다는 것은 동물의 생존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며 “동물이 체액과 수분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p8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