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인 펭귄이 남대서양의 작은 섬 사우스조지아에서 포착됐다. 펭귄은 일반적으로 등은 검은 털, 배는 흰 털이 나 마치 흰 와이셔츠에 턱시도를 입은 모습을 연상시켰다. ‘남극의 신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검은 펭귄은 이런 펭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마치 흰 백조들 사이에 서 있는 블랙 스완(black swan)과 닮았다.

생태사진 작가 이브 아담스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올 겨울 시작한 남극 탐험 중 검은 왕펭귄을 발견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왕펭귄은 황제펭귄 다음으로 큰 덩치를 가진 펭귄 종(種)으로, 주로 남극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생태 사진작가 이브 아담스가 남대서양 사우스조지아섬에서 발견한 멜라니즘(흑색증) 펭귄의 모습(오른쪽). 멜라니즘은 멜라닌 색소가 과다발현돼 온 몸과 털이 검은색으로 물드는 증상을 나타낸다./이브 아담스 페이스북 캡처

아담스는 이달 초 동료들과 함께 사우스조지아 섬 북동부 해안의 세인트 앤드류스만(Saint Andrews Bay)을 탐사하던 중 특이한 펭귄을 발견했다. 흰 배를 가진 수십만 마리 동료 펭귄들과 달리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여있었다. 아담스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펭귄이 무리에 합류하기 전 사진을 찍기 위해 서둘러 좇아야 했다”며 “다행히 무리 속에 섞이기 전에 펭귄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검은 펭귄은 흑색증(黑色症)으로 불리는 유전자 변이인 멜라니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멜라니즘은 동물이 가진 색소인 멜라닌이 과도하게 발현돼 피부와 신체 조직, 털이 검게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멜라닌 색소가 발현되지 않아 온 몸이 희게 변하는 알비니즘(백색증)과는 정 반대 현상이다.

멜라니즘 동물은 자연에서 이따금 발견된다. 흑표범이 대표적인 사례다. 블랙 팬서(black panser)라고 불리는 흑표범은 이번에 발견된 펭귄처럼 온 몸이 검은 털로 덮여 있다.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흑표범이 발견되며 아프리카에서도 가끔 발견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2019년에는 케냐 평원에서 흑표범 사진이 촬영됐는데, 이는 1909년 에티오피아에서 흑표범이 발견된 후 약 100년 만의 발견이다.

멜라니즘 펭귄도 이번이 첫 발견은 아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속 사진작가 앤드류 에반스도 2011년 사우스조지아섬의 포르투나만(Fortuna Bay)에서 멜라니즘 펭귄의 사진을 찍었다. 에반스는 당시 사진을 조류 전문가인 앨런 베이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에게 전했으며, 베이커 교수는 멜라니즘으로 인한 현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멜라니즘(흑색증) 펭귄(가운데)이 펭귄 무리 속에서 어울려 놀고 있다./이브 아담스 페이스북 캡처

멜라니즘 동물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희귀한 유전자 변이로 발생해 개체수가 적은 탓도 있으나, 검은 털로 인해 포식자에게 쉽게 발각돼 생존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펭귄의 배에 난 흰 털은 포식자를 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빙하로 둘러싸인 남극 바다에서 펭귄의 흰 털은 범고래, 바다표범 같은 포식자의 시야에서 몸을 숨기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멜라니즘 펭귄은 온 몸의 검은 털이 빙하와 대비를 이뤄 포식자의 눈에 더 잘 보인다.

아담스의 이번 발견은 당초 노란 털을 가진 펭귄을 찾기 위한 탐험에서 시작됐다. 아담스는 2021년 사우스조지아섬에서 노란 털을 가진 펭귄 사진을 찍었다. 흰 털이 나는 일반적인 알비니즘 펭귄과 달리 마치 황금처럼 빛나는 노란 빛의 털을 갖고 있었다. 아담스는 당시 촬영한 노란 펭귄을 다시 찾기 위해 올해 사우스조지아섬을 다시 방문했다.

알비니즘 펭귄이 노란 털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멜라닌 색소 중 노란색과 붉은색을 내는 유멜라닌은 소량 남아 있고, 검은색을 내는 페오멜라닌이 전혀 나오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아담스는 “노란펭귄에 이어 검은펭귄, 이후에 어떤 펭귄을 발견할지 기대된다”고 전했다.

2021년 남국 사우스조지아섬에서 발견된 노란 털 왕펭귄./이브 아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