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 비행 능력을 가졌을까.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류의 조상인 공룡이 이미 멸종해 초기 비행의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단서가 나왔다. 한국서 나온 화석이 하늘을 날기 직전 단계를 보여줬다.

알렉산더 데체키 미국 다코타 주립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한국 진주층에서 발자국이 발견된 1억600만년 전 공룡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가 날개를 이용해 빠르게 달렸으며, 이는 조류의 비행 능력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고 22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미르로랍토르는 두 발로 걷는 소형 육식 공룡이다. 이번 연구에는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도 참여했다.

한국 진주층에서 발견된 미크로랍토르(마이크로랩터)의 상상도. 미국 다코타주립대와 진주교대 공동 연구진은 미크로랍토르의 발자국 화석을 분석해 이들이 날갯짓을 하며 빠르게 걷는 '플랩 러닝'을 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미 국립과학원회보

◇한국 공룡, 빠르게 달린 비결은

연구진은 경남 진주를 중심으로 분포한 지층인 진주층을 조사하던 중 발견된 약 1㎝ 길이의 미크로랍토르 발자국 화석을 분석했다. 이 발자국 화석은 2018년 발견됐다. 당시까지 발견된 랩터의 발자국 중 가장 작은 크기로, ‘드로마에오사우리포미페스 라루스(Dromaeosauriformipes rarus)’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김경수 교수 연구진이 발자국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당시 발자국 화석 18개에서 나타난 두 가지 보행 패턴을 분석했다. 발자국 사이의 간격이 4.6㎝로 비교적 느리게 걷는 형태와 간격 25~31㎝로 빠른 걸음의 형태가 동시에 확인됐다. 이 중 빠른 걸음의 형태가 연구진의 관심을 끌었다. 발자국 크기와 간격의 비율이 이제껏 발견된 화석 중 가장 넓었기 때문이다.

2018년 진주혁신도시 인근에서 발견한 미크로랍토르(마이크로랩터) 발자국. 길이가 1㎝ 밖에 되지 않지만, 보폭이 55.63㎝에 달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김경수

연구진은 긴 보폭의 발자국 화석을 정밀 분석해 미크로랍토르가 우사인볼트보다 빠르게 뛸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발자국 크기는 약 1㎝에 불과했으나, 보폭은 약 55.63㎝에 달했다. 발자국 크기와 보폭의 차이가 53배에 달하는 것이다. 발 크기가 260㎜인 사람으로 치면 보폭이 13.78m에 달하는 것이다. 이를 걷는 속도로 환산하면 시속 약 38㎞ 수준으로 우사인볼트의 100m 세계신기록보다 빠르다.

다코타 주립대 연구진은 한국에서 발견된 연구 결과에 주목해 김경수 교수에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 한국의 미크로랍토르가 빠르게 달릴 수 있었던 이유가 조류의 비행 능력 진화 과정을 밝힐 열쇠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코타 주립대와 진주교대는 공동 연구진을 꾸리고 발자국 화석의 형태를 분석해 ‘플랩 러닝(flap-running·날갯짓하며 달리기)’을 통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플랩 러닝은 조류가 날갯짓을 하면서 약간의 부력을 얻어 달리는 방식으로, 청둥오리 같은 조류가 비행하기 전 충분한 속도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청둥오리가 강에서 날갯짓을 해 비행을 시작하고 있다. 청둥오리를 비롯한 일부 조류는 비행 속도를 얻기 위해 날갯짓을 하며 빠르게 걷는 '플랩 러닝'을 한다. 새의 비행 능력이 플랩 러닝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증거가 이번 연구로 처음 확인됐다./뉴스1

◇2011년 제시된 ‘플랩 러닝’ 가설, 첫 증거 발견

김경수 교수는 “동물의 걷는 속도는 뒷다리 근육의 단면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참새 크기의 미크로랍토르는 허벅지 근육이 작고 사실상 없어서 플랩 러닝이 아니라면 이 수준의 속도를 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조류가 비행할 수 있게 된 진화 과정을 찾았다고 평가했다. 조류의 비행 능력이 나타난 과정은 고생물학자와 동물학자들에게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미크로랍토르는 참새 크기에 불과한 만큼, 이 같은 속도를 내기에는 근육의 힘이 부족하다. 연구진은 공룡이 빠르게 걷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면서 힘을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치 조류가 비행하기 전 날개를 퍼덕이며 속도를 높이고, 비행에 필요한 속도를 얻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조류의 비행 능력이 진화한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조류의 비행이 처음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나무 위나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비행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지상에서 빠르게 달리며 양력을 얻어 비행하는 방식이다.

미국 몬타나대 연구진은 2011년 현생 조류의 날갯짓을 분석해 플랩 러닝이 조류 비행 능력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했다. 조류의 조상이 플랩 러닝을 했으며, 이로 인해 비행 능력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다만 당시에는 생체 역학적인 조사만 이뤄졌을 뿐, 조류의 조상인 수각류가 플랩 러닝을 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경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공룡이 플랩 러닝을 했다는 첫 번째 증거를 보여준다”며 “아직 논란은 많지만 이번 연구로 조류의 진화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PNAS(2024), DOI: https://doi.org/10.1073/pnas.2413810121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2011), DOI: https://doi.org/10.1242/jeb.05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