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파인 아일랜드 빙하 근처에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PNAS

세계 최대 규모의 남극 스웨이츠 빙하(氷河)는 ‘종말의 날’ 빙하로 불린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빙하 중에서 가장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고, 이 빙하가 사라질 경우 빙하의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스웨이츠 빙하를 포함한 남극 빙하의 질량이 빠르게 감소하는 원인을 밝혔다.

서기원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와 김병훈 극지연구소 연구원 공동 연구진은 “2003년부터 2020년까지 남극 빙하의 얼음 배출 속도가 빠르게 증가한 영향으로 빙하 질량이 크게 줄었다”고 1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빙하는 눈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얼음 층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빙하라는 재산이 줄어든 것은 눈이라는 수입이 줄었다기보다는 얼음이 떨어져 나가는 지출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남극 빙하의 변화는 주로 위성 영상과 강설량을 수치를 기반으로 평가됐다. 강설량은 기후 컴퓨터 모델을 사용해서 예측하고, 빙하에서 얼음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관찰해 남아있는 빙하량을 추정한다. 하지만 떨어져 나가는 얼음의 두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빙하 질량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남극 빙하의 높낮이와 중력의 변화를 측정해 보다 정밀하게 남극 빙하의 질량 변화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위성으로 강설량에 따라 빙하의 높이가 어떻게 바뀌는지 측정한 것이다. 여기에 얼음의 밀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중력의 변화를 살폈다. 빙하의 질량이 커지면 중력도 미세하게 커지는 데, 이 차이를 측정해 남아있는 빙하의 양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서기원 교수는 “기존 방법은 간접적으로 빙하의 변화를 측정해 정밀도가 낮고, 해상도도 높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위성과 중력 측정법을 동시에 사용해 해상도를 높이면서 얼음 양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며 “작은 빙하의 변화까지도 정밀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기후 모델을 활용해 빙하의 전체 질량이 변한 이유가 눈이 적게 왔기 때문인지, 빙하에서 얼음이 많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인지 분석했다. 서 교수는 “만약 눈이 온 만큼 빙하의 질량이 증가했다면 강설량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고, 눈이 많이 왔는데도 빙하 질량이 줄었다면 얼음이 많이 흘러나온 영향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남극 지역별로 빙하 감소의 원인을 파악한 결과, 스웨이츠 빙하와 파인 아일랜드 빙하가 빠르게 녹는 이유는 얼음 배출 때문이었다. 얼음 배출 현상은 거대한 빙하에서 비교적 작은 얼음 조각들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손실된 빙하 질량의 90% 이상이 얼음 배출로 인해 사라졌다. 즉 강설량이 줄어든 것보다 빙하 자체의 유실이 질량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반면 남극의 드로닝 모드 랜드와 윌크스 랜드 지역은 빙하 질량 손실의 최소 50%가 얼음 배출로 인해 나타났다. 연구진은 “남극 대륙 내에서도 빙하 감소의 원인이 지역마다 영향을 주는 정도가 다르다”며 “이 차이를 고려하면 빙하 손실이나 해수면 상승을 예측하는 모델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연구진은 남극 현지에서 방법을 검증하면서 그린란드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서기원 교수는 “기존 빙하 질량 측정법과는 결과가 많이 달라 극지 연구소와 협업해 현장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남극보다 2~2.5배 빠르게 얼음이 손실돼 해수면 상승이 빠르게 일어나는 그린란드 지역에도 적용해 볼 것”이라 덧붙였다.

참고 자료

PNAS(2024), DOI: https://doi.org/10.1073/pnas.232262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