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플리머스대와 사우스햄턴대 연구진은 2004년 5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자연에는 이미 퍼져있었지만 아주 가끔 보고되던 낯선 작은 플라스틱 조각과 섬유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연구진은 북대서양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 이 지름 2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크기의 플라스틱 조각에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논문은 하나의 새 학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세플라스틱의 첫 보고 이후 20년간 환경과 보건 분야에서 7000건이 넘는 논문이 발표됐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사람이 사는 지역이나 연안은 물론 남극과 심해저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왔다. 야생동물은 물론, 인간의 뇌와 태반까지 발견됐다.

영국과 호주, 네덜란드 연구진은 2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20년간의 연구 결과를 분석해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힌 과학적 사실과 앞으로의 과제를 담은 리뷰 논문을 발표다. 이번 연구는 20년 전 논문을 주도한 리처드 톰슨 플리머스대 해양생물학 교수가 주도했다. 논문 저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이 인간과 지구에 해롭다는 과학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공동 행동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 연구진이 미 동북부 내러간셋만에서 건져 올린 각양각색의 미세플라스틱을 연구에 앞서 분류했다. /로드아일랜드대 마이클 살레르노

◇바다에 수백만t, 육지도 수천만t 배출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섭취하기 쉬운 크기인 한 면의 크기가 5㎜이하인 플라스틱을 미세플라스틱으로 간주한다. 최근 미세플라스틱이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에 불과한 나노미터(㎚, 10억분의 1m) 크기의 나노플라스틱으로 분해되는지도 연구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이 큰 플라스틱 제품에서 떨어진 조각을 포함해 대부분 의도치 않게 생성되고 있다고 본다. 폴리에스터(PET)로 된 옷을 세탁하거나 자동차 타이어가 마모되면서 작은 조각으로 떨어져 나온다. 그 밖에 플라스틱을 코팅한 비료와 낚싯줄 그물, 인조잔디에 사용되는 고무 충전제도 주요 배출원이다.

미세플라스틱 오염 규모는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 지난 2020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미세플라스틱 80만~300만t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단체인 지구의 행동은 지난 5월 육지로 누출되는 미세플라스틱 양이 바다로 누출되는 것보다 3~10배 많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는 매년 1000만~4000만t의 미세플라스틱이 육지 곳곳에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환경단체 퓨트러스트와 옥스퍼드대, 리드대 과학자들은 2020년 7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2040년까지 환경에 방출되는 미세플라스틱이 2배 넘게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간이 미세플라스틱의 유입을 막아도 이미 생산된 대형 플라스틱 제품이 마모되거나 분해되면서 계속 생성될 것이란 분석이다.

독일 뮌헨공대 연구진은 물벼룩(Daphnia magna)을 라만현미경으로 촬영한 결과 장내 부분(왼쪽 이미지의 녹색 프레임)에서 물벼룩이 삼킨 폴리염화비닐(PVC) 입자를 확인했다. /뮌헨공대

◇”매주 신용카드 1장 먹는다는 건 과장”

미세플라스틱은 지금까지 물고기, 포유류, 새, 곤충을 포함해 1300종 이상의 동물 종에서 발견됐다. 조류나 어류 같은 동물은 플라스틱 입자를 먹이로 착각하고 섭취해서 장이 막혀 죽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 이들은 플라스틱에 묻어 있던 해로운 화학 물질에 노출되기도 한다. 특히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은 최종 포식자도 위협한다.

최종 포식자 중 하나인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마시는 물과 공기, 섭취하는 음식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발견했다. 주로 환경 오염이나 식품 가공, 포장 과정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입자가 몸에 침투한다. 최근에는 공기 중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다. 지난달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서울 대기 1㎥에 71개의 미세플라스틱이 섞여 있다고 공개했다.

미세플라스틱은 독성 물질이다. 나노플라스틱은 세포에 쉽게 침투할 수 있어 생명 유지를 하는 세포소기관을 파괴하거나 심각한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인간의 폐, 간, 신장, 혈액, 고환과 같은 생식 기관은 물론 태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을 발견했다. 최근에는 마지막 방어선인 뇌와 심장까지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립보건원(NIH)은 홈페이지에 날카로운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인체를 물리적으로 자극해서 독성을 유발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합성할 때 다양한 화학 물질이 사용되는데 대부분 내분비 교란 물질이라서 암과 생식기에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공기 속 중금속이나 유기물질을 폐로 운반해 호흡기나 심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몸에 들어간 미세플라스틱 일부는 소변과 대변, 호흡을 통해 배출된다. 하지만 훨씬 많은 미세플라스틱은 오랫동안 우리 몸에 남는다. 연구진은 2022년 오스트리아 레오벤대 마틴 플레처 교수 논문을 인용하며 “인간이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매주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인 5g의 플라스틱을 섭취한다는 일부 연구의 추정치는 엄청난 과장”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하와이대 의대 연구진은 사람의 태반에서 미세플라스틱 입자(화살표)를 발견했다. /하와이대

◇자연서 해결 불가능, 생산량 줄여야

현재까지 연구를 종합하면 미세플라스틱은 자연에서 제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구진은 “결국 살면서 미세플라스틱에 불가피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서 “미세플라스틱 오염은 인간의 행동과 결정의 결과라는 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은 지난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2024년 말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세계 첫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했다. 오는 11월 개최되는 5차 협상에선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과 함께 미세플라스틱 감축 조치도 집중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doi.org/10.1126/science.adl2746

Science(2020), DOI: http://doi.org/10.1126/science.aba9475

IUCN(2020), DOI: https://doi.org/10.2305/IUCN.CH.2017.01.en

Science(2004), DOI: http://doi.org/10.1126/science.1094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