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인간이 가장 성공한 것 같지만 수로 따지면 단연 개미가 우세하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연구진은 2022년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에 서식하는 개미 수가 무려 2경(京) 마리에 달한다고 밝혔다. 세계 인구(약 79억명)를 고려하면 1인당 개미 약 250만 마리와 더불어 사는 셈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듯 개미는 더운 여름에도 열심히 일해서 이토록 성공한 것일까.
최근 개미의 성공은 꽃 덕분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구에 처음 등장한 개미는 특정 먹이를 잡는 데 특화돼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지만, 후발 주자는 꽃이 피는 속씨식물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먹이를 찾아 번성했다는 것이다. 진화는 한 가지에만 매달리는 외골수보다 융통성이 있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인류의 진화와 닮은 개미의 역사
현재 개미는 1만6000여 종(種)이 있다고 알려졌다. 개미는 1억 5000만년 전에 처음 출현해 다양한 종으로 발전했다. 초기 개미와 오늘날 개미의 직계 조상은 1억 5000년 전부터 8300만년 전까지 공존했다. 이후 초기 개미는 사라지고 오늘날 개미들만 번성했다. 마치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먼저 유라시아에 정착한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수만년 공존했지만, 결국 호모 사피엔스만 남은 것과 같다.
프랑스 렌대학의 뱅상 페리코트(Vincent Perrichot) 교수 연구진은 개미 화석과 오늘날 개미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결합해 개미 후발 주자의 성공 요인을 찾았다. 지난 11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오늘날 개미는 처음에 등장한 개미와 생존경쟁에서 이겼기보다 속씨식물이 등장한 환경 변화의 도움을 받아 번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페리코트 교수는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코렝탕 주오(Corentin Jouault) 연구원과 함께 개미 수백종의 화석 약 2만4000점을 조사했다. 화석 상당수는 보석인 호박(琥珀)에서 나왔다. 호박은 나무 수지가 굳어 단단해진 물질이다. 개미가 지나가다가 나무에서 송진이 떨어져 갇힌 채 화석이 된 것이다. 동시에 오늘날 개미 1만4000여 종의 유전정보도 분석했다. 그 결과 1억 년에서 5000만년 전에 꽃이 피는 속씨식물이 양치식물과 침엽수를 대체하면서 개미의 세대교체가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외골수보다 융통성 있는 개미가 성공
2006년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사이언스에 개미의 진화 계통을 바탕으로 개미의 다양화를 이끈 것은 속씨식물의 개화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럴듯한 상관관계일 뿐이지 인과관계는 아니라고 봤다. 벌이나 나비, 딱정벌레는 꽃이 피는 식물을 먹기 때문에 속씨식물이 등장하면서 번성할 수 있지만, 개미는 주로 곤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진은 개미 역시 꽃식물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열대지방의 아카시아 나무와 공생(共生)하는 ‘슈도미르멕스 스피니콜라(Pseudomyrmex spinicola)’ 종이다. 아카시아는 잎에 단백질이 풍부한 벨트체(Beltian body)란 덩어리를 만들어 개미에게 준다. 당분이 많은 수액도 좋은 먹잇감이다. 또 개미는 아카시아의 속이 빈 가시를 집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아카시아가 개미를 먹고 자게 해주는 것이다. 대신 개미는 아카시아 나뭇잎을 먹는 초식동물이나 곤충을 쫓아 버린다. 몸에서 항생물질을 분비해 질병을 막고 기생 식물도 없앤다.
이와 달리 초기 개미는 오로지 한가지 먹이만 찾다 보니 속씨식물이 번성해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예는 호박에 남은 지옥개미에서 잘 알 수 있다. 지옥개미는 개밋과(科) 아래 ‘하이도미르메신(Haidomyrmecine)’ 아과(亞科)에 속한다. 공룡이 돌아다닌 중생대 백악기(1억4600만년에서 6600만년 전)에 살다가 멸종한 개미다. 아과의 이름은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인 하데스를 뜻하는 그리스어 ‘하이도스’와 개미를 뜻하는 ‘미르미카’를 합쳐 만들었다.
미국 뉴저지 공대 연구진은 지난 2020년 미얀마에서 발굴한 호박에서 9900만년 전 지옥개미가 어린 바퀴벌레를 문 모습을 확인했다. 이름대로 호박 속의 지옥개미는 마치 죽음의 신이 드는 커다란 낫과 같은 턱으로 바퀴벌레를 물고 있다. 오늘날 개미와 달리 턱이 좌우로 움직이지 않고 아래위로 물렸다. 호박 속 개미의 턱은 이마에 나 있는 뿔과 함께 바퀴벌레를 붙잡고 있었다. 지옥개미처럼 특정 먹이에 특화된 개미는 속씨식물이 번성해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식물 사랑 받는 개미도 계속 변해
사랑은 변한다. 개미는 꽃 피는 식물과 공생하면서 번성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다. 식물이 선택한 개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나마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는 지난 2021년 아카시아 나무는 공생하는 개미 중 게으른 종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한다고 밝혔다.
슈도미르멕스 스피니콜라 개미는 아카시아와 공생 관계에 충실하지만, ‘크레마토가스테르 크리노사(Crematogaster crinosa)’ 종 개미는 아카시아에 기대 살면서도 초식동물을 제대로 쫓아내지 못하고 몸에서 항생물질도 내지 않는다. 이솝 우화라면 아카시아를 열심히 도운 개미가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연구진이 3개월 관찰한 결과 현실은 달랐다.
아카시아는 공생 개미가 없어도 속이 빈 가시를 만들었지만, 보상으로 주는 음식은 달랐다. 공생 개미가 있는 아카시아가 수액을 75% 더 분비했다. 놀랍게도 이 수액은 게으른 개미에게 더 많이 돌아갔다. 성실한 스피니콜라 개미가 있는 아카시아는 나뭇잎 아래쪽에서만 수액을 분비했지만, 게으른 크리노사 개미가 있으면 나뭇잎 끝부분에서도 추가로 수액을 분비했다.
게으른 개미가 보상을 더 받으려고 잎을 가로질러 가다가 해충을 만나도록 아카시아가 유도한 것이다. 아무리 게으른 개미라 해도 눈앞의 해충은 쫓아낸다. 식물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개미보다 게으른 개미가 성공한다면, 어쩌면 식물이 개미의 진화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PNAS(2024), DOI: https://doi.org/10.1073/pnas.2317795121
PNAS(2022), DOI: https://doi.org/10.1073/pnas.2201550119
The Science of Nature(2021), DOI: https://doi.org/10.1007/s00114-021-01738-w
Current Biology (2020), DOI: https://doi.org/10.1016/j.cub.2020.06.106
Science(200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1124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