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제이슨 무어는 2021년 8월 퍼스의 들판에서 회섹캥거루 무리가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카메라를 들었다. 남반구는 이때가 늦겨울이다. 퍼스가 있는 서호주는 겨울에 비가 내리는 지중해성 기후여서 들판에는 노란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무어는 “순간 캥거루 한 마리가 마치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튕기는 듯한 우스운 자세를 취한 것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배가 불룩한 암컷이었다.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Comedy Wildlife Photography Awards 2023)은 23일 제이슨 무아가 찍은 캥거루 사진인 ‘기타 치는 캥거루!(원제 Air Guitar Roo)’가 올해 종합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 사진은 육지 부문 1위상도 받았다. 우승자는 트로피와 함께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에서 1주일 사파리 여행을 할 기회를 부상으로 받는다. 이와 함께 수중과 공중, 주니어 부문 상과 가작 10점도 선정됐다. 연작과 동영상 부문 상도 결정됐다.
◇멸종위기 동물에 관심 높이려 시작
2015년 영국의 사진작가 폴 조인슨-힉스(Paul Joynson-Hicks)와 톰 설람(Tom Sullam)이 시작한 이 대회는 야생동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시상한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 목적을 함께 갖고 있다.
사진전은 매년 공동 주최한 영국의 야생동물 보호재단인 휘틀리 자연기금(WFN)에 대회 수익금 일부를 기부했다. 휘틀리 자연기금은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80국에서 200가지 이상의 동물보존 활동에 328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했다.
올해 사진전에는 85국에서 1842명이 5300점을 출품했다. 제이슨 무어는 “당시 근처 호수에서 물새를 촬영하려다 성과 없이 돌아오던 길에 캥거루 무리를 만났다”며 “기타 치는 자세를 취한 캥거루를 보자마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이 표방하는 ‘행복한 분위기와 기분 좋은 요소’를 잘 담았다고 평가했다.
◇고자질 아기새와 물이 싫은 펭귄
폴란드의 야첵 스탄키에비치가 찍은 유럽방울새(greenfinch) 사진인 ‘쟤가 그랬다고요(원제 Dispute)’는 주니어 부문 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받았다. 폴란드 비아워비에자 숲에 사는 유럽방울새가족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다. 맨 오른쪽은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아기새다.
카메라 앵글 속에서 아기새는 오른쪽을 가리키며 뭔가 하소연을 하는 듯하다. 마치 어미에게 꾸지람을 듣고 “쟤가 그랬지 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대회 공동 설립자인 톰 설람은 “인기상은 케이크를 장식한 체리와도 같다”며 “주니어 참가자가 이 큰 상을 수상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중 부문 1위는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줄무늬 왜가리의 모습을 담은 ‘예상치 못한 추락’이 선정됐다. 수중 부문 1위는 마치 춤을 추듯 우아한 자세를 잡은 ‘발레리나 수달’이 차지했다.
호주의 티메아 앰브러스는 땅다람쥐가 먹이를 낚아채려고 공중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연속으로 포착해 연작 부문 상을 받았다. 동영상 수상작은 남국의 아델리펭귄 한 마리가 바다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담은 ‘앗, 차가워(원제 Too Cold)’'에게 돌아갔다.
◇일상에 지치고 장애물에 걸리고
가작 10점도 야생동물의 다양한 웃긴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의 존 브루멘캄프가 짝은 큰회색올빼미(great gray owl)는 나뭇가지에 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작가는 올빼미는 오후 내내 위엄 있는 자세를 취했지만, 한 번 몸을 쭉 펴더니 “월요일이 아직 안 끝났나”라는 표정을 지으며 축 늘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진에 ‘월요병(Monday-Blahs)’이란 제목을 달았다.
미국의 웬디 케이브니가 출품한 ‘어젠 없었는데ㅠㅠ’는 비둘기가 선인장에 정면으로 날아가는 듯한 모습을 담았다. 비둘기의 최후는 알려지지 않았다.
수상작 중에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들이 많다. 호주의 라라 매튜스는 멜버른 동부 교외의 웨스터폴즈 공원에서 캥거루 사진을 찍었다. 다른 캥거루들이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을 때 어린 캥거루 한 마리가 카메라를 보고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작가는 그 모습을 찍고 ‘팡팡(원제 Boing)’이란 제목을 달았다.
인도의 프라틱 몬달은 정글에서 자칼을 찍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길에 원숭이가 나타나 겨드랑이를 긁으려는 듯 손을 쭉 뻗는 것을 보았고, 동시에 그 뒤로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몬달은 마치 원숭이가 사슴을 보라고 가리키는 듯하다고 ‘오른쪽을 봐’라는 제목을 달았다.
◇스누피 닮은 오리, 눈뭉치 같은 뇌조
작가들은 야생동물이 모습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미국의 다코다 바카로는 버지니아주에서 여우가 드러누운 모습을 포착했다. 나뭇가지를 문 자세가 마치 어른 몰래 담배를 문 청소년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담배 피울 나이 아닌데(원제 Excuse me sir but I think you’re a little too young to be smoking.)’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붙였다.
거북이가 코끝에 앉은 잠자리를 보고 미소 짓고, 절벽 둥지에서 아기를 가운데 두고 엄마와 아빠 바닷새가 가족사진을 찍듯 옹기종기 모인 모습도 가작으로 뽑혔다.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새들도 있다. 한겨울 하얀색 뇌조가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눈 뭉치가 굴러오는 것 같다. 들꿩과(科) 조류인 뇌조는 여름에는 진한 갈색을 띠다가 겨울이 되면 흰색으로 털갈이를 한다. 덕분에 눈과 잘 구분되지 않아 천적을 피할 수 있다.
영국의 브라이언 매튜는 섬에서 코뿔바다오리가 수면에 뜬 채로 물 속을 내려다보며 해피리를 찾는 순간을 포착했다. 사진을 180도 거꾸로 하면 만화 주인공 스누피가 늘 지붕 위에서 누워 자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스누피 머리 위에 하늘이 있었다면, 바다오리에겐 바다가 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