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심해에서 채집한 헬멧해파리(Periphylla periphylla). 심해 채굴이 진행되면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입증됐다./GEOMAR

심해(深海) 광물 채굴이 해파리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유용 금속을 채굴하면 해저 생태계에 피해를 준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실험을 통해 해양 동물에 미치는 피해를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킬 헬름홀츠 해양연구센터(GEOMAR)의 헹크 얀 호빙(Henk-Jan Hoving) 박사 연구진은 2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심해 채굴 환경이 깊은 바다에 사는 해파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유 퇴적물에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 보여

바닷속 수백~수천m 아래 심해저에는 노다지가 있다. 4000m 아래 해저 평원에는 감자 크기의 광물 덩어리인 단괴(團塊)가 널려 있다. 그 안에는 배터리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니켈과 망간, 코발트, 구리 같은 희귀 금속들이 들어있다. 산처럼 솟은 해산(海山)은 코발트가 풍부한 지각으로 덮여 있으며, 심해의 온천인 열수(熱水) 분출구 주변에는 황화구리와 황화철이 풍부하다.

과학자들은 해저 광물 채굴이 연약한 심해저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장 큰 문제는 부유 퇴적물이다. 채광기가 금속 단괴를 빨아들이면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미세한 입자의 퇴적물들이 떠올라 바다를 뒤덮는다. 육지에서 사람들이 미세 먼지에 시달리듯 심해저 생물도 부유 퇴적물에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 이번에 독일 연구진은 이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해파리는 심해 광물 채굴처럼 부유 퇴적물이 늘면 몸에 붙은 입자를 제거하려고 점액을 과도하게 분비한다. 평소엔 몸이 깨끗하지만(4) 퇴적물 농도가 높아지면 몸의 30% 이상이 점액으로 덮인다(1)./Nature Commnunications

연구진은 노르웨이 협만에 사는 심해 헬멧해파리(학명 Periphylla periphylla) 64마리를 채집했다. 심해 온도와 빛 조건에 맞춘 수조에 해저 광물을 채집할 때 발생하는 정도로 부유 퇴적물을 넣어주자 해파리는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다. 퇴적물 농도가 1L(리터)당 17㎎(밀리그램, 1㎎은 1000분의 1g) 이상이 되면 해파리는 몸에서 엄청난 양의 점액을 분비했다. 몸에 달라붙은 퇴적물 입자를 제거하려는 행동이다.

해파리는 고농도의 퇴적물에 24시간 동안 노출된 후 몸의 30% 이상이 점액으로 덮였다. 연구진은 “점액을 생성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기 때문에 해파리가 퇴적물에 장기간 노출되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한 퇴적물 농도가 높아지면 해파리의 호흡 속도가 두 배까지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파리가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는 말이다. 해파리가 점액을 과도하게 분비하면 에너지 대사와 상처 회복, 면역 체계에 관여하는 유전자들도 과도하게 작동했다.

포르투갈 아베리아대의 심해 생태학자인 패트리샤 에스퀘테 가로테(Patricia Esquete Garrote) 교수는 이날 네이처지에 “지금까지 심해 연구는 대부분 채굴이 해저에 미치는 영향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황금과도 같은 연구”라고 평가했다. 바다 밑바닥만 살폈지 이번 연구처럼 해수면과 해저 사이 바닷물에 사는 생물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평양 클래리온-클리퍼톤 해역(CCZ)에서 발견된 다양한 심해 생물들. 5000종 이상이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신종이다./SMARTEX

◇개발 속도 빨라지면서 반대 목소리도 높아

심해 광물 채굴을 두고 개발업체와 과학계의 의견이 갈린다. 해저 광산 개발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심해 채굴이 육상 채굴보다 윤리적 문제가 덜 하다고 주장한다. 심해에는 광산을 개발하느라 현지 원주민을 이주시킬 필요가 없으며, 파괴할 열대우림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니켈 생산량 1위 국가는 열대우림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해저 광산 개발이 해저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독일 해양연구센터 연구진은 “해파리처럼 젤라틴으로 이뤄진 다른 심해 생물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면 해저 광물 채취는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킬 것”이라며 “이는 이산화탄소 흡수와 영양물질 순환과 같은 해양 생태계의 중요한 기능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생명체가 거의 없는 사막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해저 광산 지역이 수많은 생물이 사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밝혀지면서 과학계의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지난 5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태평양 클래리온-클리퍼톤 해역(Clarion-Clipperton Zone, CCZ)에서 총 5578종의 생물을 발견했으며, 이 중 92%는 신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클래리온-클리퍼톤 해역은 하와이와 멕시코 사이에 약 600만 ㎢ 면적의 해저 지역이다. 평균 수심은 5000m이고, 면적은 인도의 두 배에 이른다. 유엔 산하 국제해저기구(ISA)는 그동안 각국의 기업과 연구소에 심해저 광물 채굴권 31건을 부여했는데, 그중 19건이 클래리온 클리퍼톤 해역에 집중됐다. 고가의 광물들이 가장 많이 매장된 곳이기 때문이다.

과학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해저 광산을 개발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업체들은 국제해저기구가 채굴 관련 규제안을 발표하면 바로 상업 채굴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 시기는 2024년 말이나 2025년 초로 예측했다. 태평양의 소국인 나우루는 유엔 해양법협약의 조항을 발동해 규제 입안 속도를 더 높이고 있다.

캐나다 심해 광물 채굴업체인 메탈 컴퍼니의 무인 수중 작업 로봇(ROV)./The Metals Company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3),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43023-6

Current Biology(2023),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4.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