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산맥에 사는 푼타데바카스잎귀쥐. 해발 6000m 이상 고지대에서 이 쥐의 미라들이 잇따라 발견됐다./Marcial Quiroga-Carmona

가왕(哥王)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고 노래했다. 표범보다 더 고고하게 살다 간 동물이 있다. 5895m 높이 킬리만자로보다 더 높은 안데스 산맥의 산 정상에서 잇따라 작은 생쥐들이 미라가 된 채 발견됐다. 화성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생쥐가 살았다는 점에서 포유동물의 생리적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네브라스카대의 진화생물학자인 제이 스토츠(Jay Storz) 교수 연구진은 24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남미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있는 안데스 산맥의 해발 6000m 이상 고지에서 푼타데바카스잎귀쥐(학명 Phyllotis vaccarum)들이 미라가 된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화성과 흡사한 환경에서 살았던 생쥐

안데스 산맥에 있는 아타카마(Atacama) 고원 지대는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40%에 불과하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지구에서 화성 표면과 가장 흡사한 곳이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이곳에서 화성 탐사 장비를 시험하는 곳도 그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해발 6000m 이상 고도에서는 포유류가 생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토츠 교수는 “이번 발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포유류가 화성과 같은 열악한 환경의 화산 정상에 살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 훈련된 산악인은 하루 정상 등반을 시도하는 동안 이러한 극한의 고도를 견딜 수 있다”며 “생쥐가 실제로 그러한 고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작은 포유류의 생리적 내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스토츠 교수 연구진은 안데스 산맥의 살린(Salín) 화산 정상에서 우연히 바위 더미 가장자리에 있는 생쥐 사체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곧 주변 바위를 수색해 같은 정상에서 미라 7구를 더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후 안데스 산맥의 모든 화산 정상을 체계적으로 수색했다. 지금까지 해발 6000m가 넘는 화산 18곳을 포함해 모두 21곳의 화산 정상을 수색했다. 연구진은 해발 6000m 이상 화산 정상에서 생쥐 미라 13구를 발견했다. 미라 주변에는 다른 쥐들의 뼈들도 나왔다.

연구진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해보니 살린 화산 정상과 코피아포(Copiapó)에서 발견한 미라는 1955년 이후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풀라(Púlar)산에서 나온 미라 4구는 연대가 잉카 제국이 스페인 침략자에게 무너지고 1세기 이상 지난 350년 전으로 추정됐다. 유전자 분석 결과, 미라들은 이 지역 낮은 고도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잎귀쥐 종(種)으로 밝혀졌다.

미 네브라스카대의 제이 스토츠 교수가 안데스 산맥의 오호스델살라도산 6893m 정상에 서 있다.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40%에 불과한 이런 고지대에서 생쥐가 살았다는 증거가 나왔다./Mario Pérez Mamani

◇잉카 제국 한참 뒤여서 제물 가능성 낮아

생쥐가 왜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절반도 안 되는 영하의 눈 덮인 산 정상까지 올라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스토츠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생쥐 미라가 일부에서 주장하듯 사람이 일부러 산 정상에 갖다 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고고학자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안데스산맥의 산봉우리를 탐험하던 중 생쥐 사체 몇 구를 발견했다. 당시 학자들은 생쥐가 과거 잉카인들과 같이 산 정상까지 이동했다고 생각했다. 500년 전 잉카인들은 인간과 동물을 산 정상에 제물로 바쳤다고 알려졌다. 생쥐는 당시 제물 중 하나였거나 아니면 제사를 지내러 산에 오른 잉카인의 짐에 숨었다가 희생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생쥐들은 잉카인들과 공존할 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길어야 350년 전이어서 잉카인과 연대가 다르다. 연대가 수십 년밖에 되지 않는 미라도 있어 최근까지 생존했다고 볼 수 있다. 미라들이 유전적으로 가깝고 암수 비율도 비슷하다는 점도 이를 반증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실제로 최근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서 살아있는 생쥐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스토츠 교수는 2020년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을 가로지르는 유야이야코(Llullaillaco) 화산의 해발 6739m 지대에서 살아있는 잎귀쥐를 포착했다. 그렇게 높은 고도에서 서식하는 포유류는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미국 네브라스카대의 제이 스토츠 교수가 2020년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을 가로지르는 유야이야코(Llullaillaco) 화산의 해발 6739m 지대에서 살아있는 노랑엉덩이잎귀쥐(학명 Phyllotis xanthopyg)를 포획했다./PNAS

◇고지대 생존에 적합한 유전자 있는지 분석 중

캐나다 맥마스터대의 생리학자인 그랜트 맥클레랜드(Grant Mcclelland)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이번 유전체 분석 결과와 다른 증거는 포유류가 이렇게 극한의 고도에 살 수 없다고 의심하는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며 “포유류가 살 수 있는 환경의 한계에 대한 이해를 더 넓혀줬다”고 평가했다

포유류는 먹이를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산소가 필요하다. 즉 산화 과정을 통해 영양분을 에너지로 바꾼다. 동물은 추운 곳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산소가 부족하고 추운 곳에서 포유류가 살기 힘들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고지대 생존 최고 기록을 가진 동물은 한 세기 전 에베레스트산의 해발 6200m 지대에서 발견된 토끼과 동물인 우는토끼(pikas)였다.

연구진은 생쥐가 저산소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특별한 생리적 특성이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스토츠 교수는 실험실에 안데스산맥 고원 지대와 비슷한 환경을 갖추고 고지대에서 포획한 생쥐를 실험하고 있다. 또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칠레의 안데스산맥을 등반하면서 소형 포유류들을 조사하고 있다. 쥐의 위에 있는 DNA를 예비 분석한 결과 이끼가 식단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이스라엘 헤브루대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한 데니소바인 소녀의 복원도.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했던 데니소바인은 오늘날 티베트인에게 고지대 생존에 적합한 유전자를 물려줬다./이스라엘 헤브루대

과학자들은 고지대에 사는 포유류는 다른 동물과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본다. 사람에서도 같은 일이 나타났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지난 2014년 네이처에 티베트인들은 혈액에서 산소를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를 데니소바인(Denisovan)들로부터 물려받아 고산지대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데니소바인은 2008년 시베리아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뼈가 처음 발견된 고생인류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4만 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호모속(屬) 인류이다. 연구진은 티베트인과 중국 한족을 각각 40명씩 비교한 결과, 티베트인 유전자에 헤모글로빈 생산을 조절하는 EPAS1이라는 특수 변형 유전자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유전자는 헤모글로빈과 적혈구 생산을 크게 줄여 해발 4000m 이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저산소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참고 자료

Current Biology(2023),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8.081

PNAS(2020), DOI: https://doi.org/10.1073/pnas.2005265117

Nature(2014), DOI: https://doi.org/10.1038/nature13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