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일 구달 박사가 비무장지대(DMZ)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두 학자는 'DMZ 생태의 미래, 희망의 이유'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내용은 지난 2일 유튜브 세바시 채널에서 공개됐다./유튜브 캡처

“우리는 아주 길고 어두운 터널의 초입에 서 있으며 터널 끝에는 ‘희망’이라는 작은 별이 빛나고 있다. 하지만 터널 입구에서 잠자코 앉아서 별이 다가와 주기만 바라면 소용이 없다. 적극적으로 절실히 행동해야 입구와 별 사이에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나에게 희망은 무언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은 바꿀 수 있다”

지난달 11일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제일 구달 박사가 비무장지대(DMZ)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를 만나 이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날 두 학자는 ‘DMZ 생태의 미래, 희망의 이유’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내용은 지난 2일 유튜브 세바시 채널에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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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달 박사는 60년 이상 침팬지를 연구하고 동물의 처한 야생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자는 활동을 해왔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환경 보호 운동인 ‘뿌리와 새싹’도 이끌고 있다. 최 교수는 한국의 대표 생태학자로 경기도 DMZ 오픈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이다. DMZ 오픈페스티벌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더 큰 평화’를 목표로 DMZ의 생태와 평화,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행사다. 지난달 8일에는 파주 장산전망대에서 ‘뿌리와 새싹 DMZ 생태평화 선언’을 선포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구달 박사에게 “이번 페스티벌에서 말하는 ‘더 큰 평화’는 평화보다 더 큰, 남북간의 평화뿐 아니라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까지 포함한다”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만약 우리가 자연과 평화를 이루지 못하면 사람간에도 결코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사람끼리 평화를 이루지 못해도 자연에게 피해가 간다”며 “모든 것이 하나로 엮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3년간 코로나19 대유행의 원인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가 깨졌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구달 박사는 “인간이 동물서식지에 조금씩 침범하며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코로나19는 인간이 동물을 존중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가 야생동물을 밀수하고 전 세계 시장에서 불법으로 거래한 결과, 동물들 사이에서 돌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염되기 쉬워졌다”고 설명했다.

두 학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구달 박사는 “가장 똑똑한 종인 인간이 어쩌다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라며 “인간은 전쟁이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환경에도 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할까”하고 안타까워했다. 최 교수는 “여기에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소실, 식량 위기, 인수공통감염병까지 겹쳐 세계적으로 불안함이 더 커졌다”며 “그럼에도 구달 박사는 늘 희망을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희망을 가질 만한 근거가 있나”고 물었다. 이에 구달 박사는 “전 세계 문제를 생각하면 누구나 다 우울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기회의 시간이 있다”며 “세상을 바꾸고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이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달 박사가 지금까지 펴낸 책들은 대부분 제목에 공통적으로 ‘희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희망의 이유’와 ‘희망의 씨앗’, ‘희망의 밥상’, ‘희망의 자연’ 그리고 최근에 낸 ‘희망의 책’이다. 구달 박사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만나온 청소년들은 분노와 우울에 빠져 있다”며 “희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지만 희망이 없다면 일단 한번 행동해 보자”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나에게 희망은 무언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현 세상이 우울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호소할 때 늘 이렇게 답한다”며 “당신이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은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 주변 환경을 바꾸는 행동으로 구달 박사는 쓰레기를 줍거나 어려운 사람, 난민을 위해 모금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런 행동을 하면 뭔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듯한 긍정적인 기분이 들어 더 많이 실천하게 된다”며 “세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변화를 만들고 있음을 깨달으면 지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가 지난 달 7일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내 용산서가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지난해 분양받은 은퇴 안내견 새롬이와 입을 맞추고 있다./연합뉴스

구달 박사가 이끄는 ‘뿌리와 새싹’도 이 같은 생각에서 비롯됐다. 구달 박사는 “1980년대 말 청년들도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며 “어른들이 미래를 망쳤고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1991년 고등학생 12명과 함께 사람과 동물, 환경을 돕기 위해 이 뿌리와 새싹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뿌리와 새싹은 69개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구달 박사는 “뿌리와 새싹이 전하는 주요 메시지는 개인 한 명이라도 일상에서 변화를 만들 수 있고, 그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청년들이 활동하다보면 피부색이나 언어, 문화, 종교 관계 없이 인간은 모두 울고 웃는 존재이며 우리에게는 모두 같은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두 학자는 DMZ와 평화 문제에 대해서도 논했다. 최 교수는 “DMZ는 지난 70년 간 사람이 접근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회복된 곳으로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다”며 “여기를 잘 지켜서 향후 통일 세대에게 전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잘 지켜지겠냐는 질문에 구달 박사는 “남한과 북한이 이곳의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며 “남북한 청소년들이 서로 만나는 자리, 양쪽 모두가 뿌리와 새싹을 추진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래 세대는 미래의 존재가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 손자처럼 지금 함께 살아가는 어린이들”이라며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자연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치유가 되며 가상 세계에 지어진 자연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구달 박사는 “기나긴 터널 끝에 반짝이는 작은 별을 따라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