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 카슨은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에서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면 봄이 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슨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갈수록 봄이 빨라지지만, 새들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갈수록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모건 팅글리(Morgan Tingley) 교수와 미시건 주립대의 캐시 영플레시(Casey Youngflesh) 박사 연구진은 지난 4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기후변화로 21세기 말까지 북미 대륙에서 봄이 한 달 가까이 빨라지면 조류의 번식이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빨라진 봄 따라가지 못해 번식 감소
새들은 잎이 나고 꽃이 피면 짝짓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전 지구적인 기온상승으로 새들이 봄이 왔는지, 번식할 때가 언제인지 감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논문 제1 저자인 영플레시 박사는 “21세기 말까지 봄이 약 25일 빨라지지만, 새들의 번식기는 불과 6.75일 앞당겨지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봄과 새들의 번식기 사이에 3주 이상 간극이 벌어지는 셈이다. 새가 새끼를 낳아 키우려면 먹이가 풍부해야 하는데 봄을 놓치니 힘들어진다. 연구진은 명금류(鳴禽類)의 평균 번식은 1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명금류는 참새처럼 노래하는 새의 총칭으로, 조류 종(種)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연구진은 2001년부터 2018년 사이 북미 대륙 179곳을 대상으로 철새와 텃새 41종의 번식기와 새끼 수를 조사했다. 동시에 인공위성 영상으로 봄에 언제 식물이 싹이 나는지 분석했다. 봄이 언제 오는지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 종마다 번식 최적기가 있으며, 봄이 일찍 오면 새의 번식도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식물이 출현하기 전이나 출현하고 한참 뒤에 번식해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지금처럼 인간에 의한 온난화가 계속되면 새들이 점점 빨라지는 봄에 따라가지 못해 개체수가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대부분 새는 봄이 빨라지면 타격을 입지만 홍관조와 뷰익굴뚝새, 꼬리치레 같은 일부 종은 오히려 개체수가 더 늘 것으로 예측됐다. 이들은 텃새여서, 철새보다 봄에 식물이 나오면 바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예외일 뿐이다. 텃새 대부분도 봄이 일찍 찾아오는 것을 따라잡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하는 시기가 나흘 빨라질 때마다 새의 번식기는 하루 정도만 빨라졌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계절주기 맞춰 보존 대책 세워야
기후변화는 이미 새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1970년 이래 30억 마리 가까운 새가 사라졌다. 이는 북미(北美) 대륙에 사는 조류의 29%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지난 2019년 국제 술지 ‘사이언스’에 “1970~2017년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조류 529종을 조사한 결과, 이 시기 개체 수가 29억 마리나 감소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조류의 급감은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최근 바이오 연료용 작물 재배가 늘면서 초지가 크게 줄었는데 그곳에 사는 새들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살충제 남용도 새들의 먹잇감인 곤충을 줄여 새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
코넬대 연구진은 “희귀 조류의 수가 줄어들면 흔한 다른 새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찌르레기처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개체 수 감소의 90%가 참새·개개비·되새·개똥지빠귀 같은 흔한 조류 12개 과(科)에서 일어났다.
UCLA 연구진은 앞으로 조류 보존 전략은 기후변화로 인한 계절 주기의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옮기는 철새가 봄이 빨라지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연구해왔다. 팅글리 교수는 “ 30년 가까운 연구를 통해 봄이 빨라지면 동물과 식물이 제때 만나지 못할 것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이를 입증한 것이다.
◇벌들도 빨라진 개회시기 맞추지 못해
빨라진 봄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새의 먹잇감인 곤충도 마찬가지이다. 온난화로 식물의 개화(開花) 시기가 빨라지면서 꽃을 찾는 곤충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동물은 식물만큼 온난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봄이 빨라지면 잎도 빨리 난다. 곤충 애벌레가 고치에서 나와도 여린 잎이 이미 자라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다행히 벌들이 온난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봤다. 미국 럿거스대 연구진은 지난 2011년 PNAS에 “북미 대륙 야생벌 10종의 봄철 활동시기가 130년 만에 열흘 빨라졌다”고 밝혔다. 야생벌의 활동시기가 빨라진 것은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두드려졌다. 연구진은 동시에 106종의 북미 동북부 지역 자생 식물의 개화 시기 연구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벌의 활동시기와 식물의 개화시기는 거의 비슷한 속도로 빨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럿거스대 연구결과는 야생벌들이 봄꽃이 피는 때를 잘 쫓아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벌이 계속 시간을 잘 맞출지는 의문이다. 당시 럿거스대 연구진도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된다면 벌이 나오는 시기와 꽃이 피는 시기에 차이가 발생해 생태계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 유타 주립대 연구진은 지난 2020년 국제 학술지 ‘생태학보’에 꿀벌의 활동은 개화 시기보다 온난화에 덜 민감하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콜로라도 로키산맥에서 9년 동안 꿀벌 67종을 관찰한 결과 식물과 꿀벌이 온난화에 대응하는 정도가 달라 개회 시기와 꽃가루받이를 할 꿀벌의 활동 시기가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캐나다 캘거리대와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진은 2013년 ‘생태학’ 저널에 일본 북부 산악지역에서 양귀비과(科) 식물인 ‘코리달리스 앰비구아(Corydalis ambigua)’가 온난화로 눈이 일찍 녹아 개화 시기가 빨라졌지만, 꽃가루받이를 할 뒤영벌은 벌은 비슷한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뒤영벌아 빨라진 봄을 따라가지 못하자 꽃가루받이 횟수가 줄어들었고 식물은 씨앗을 덜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난화로 꿀벌 나는 소리와 새 우는 소리가 사라지는 침묵의 봄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PNAS(2023), DOI: https://doi.org/10.1073/pnas.2221961120
Science(2019),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w1313
Ecology Leeters(202), DOI: https://doi.org/10.1111/ele.13583
Ecology(2013), DOI: https://doi.org/10.1890/12-2003.1
PNAS(2011), DOI: https://doi.org/10.1073/pnas.1115559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