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진이 영국에 서식하는 박쥐에서 사람 감염 가능성이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새롭게 찾았다. 미래 감염병을 예방하려면 생태계 보호를 통해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로이터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 접어드는 가운데 영국에 사는 박쥐에게서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당장 대유행으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은 낮지만 코로나의 위협이 여전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빈센트 사볼라이넨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생명과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영국에 서식하는 박쥐에게서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새롭게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 지금 당장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은 낮지만, 변이를 거치면서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인류 역사에 많은 인명 피해를 입힌 감염병을 살펴보면 대부분 동물에게서 시작해 사람에게 옮겨진 인수공통감염병이 많다. 특히 농사를 짓고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기르면서 홍역, 결핵, 천연두 같은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행했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감염병으로 불리는 흑사병도 도시에 살던 쥐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수공통감염병은 250종에 달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오염으로 야생동물과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느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코로나19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박쥐는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를 보유하면서 도심 속 건물에 서식하기도 해 ‘감염병의 저수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연구진은 영국에 살고 있는 박쥐 17종 중 16종에서 앞으로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큰 바이러스를 찾았다. 박쥐의 대변 샘플 48개를 수집해 바이러스의 종류와 유전적인 특징을 조사한 결과 9종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박쥐에 살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계통을 조사한 결과 2종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種)으로 나타났다. 이 중 1종은 2015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메르스(MERS)와 관련됐고 다른 1종은 코로나19를 유발한 사르베코바이러스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류에게 치명적인 감염병을 일으킨 바이러스의 새로운 친척이 발견된 것이다.

연구진은 이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동물의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 인체 세포에 결합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실험 결과 사르베코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인간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2(ACE2)에 결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결합 효율은 낮아 당장 감염병을 일으킬 확률은 거의 없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사볼라이넨 교수는 “ACE2 단백질이 아주 많은 상황에서만 결합하는 만큼 새롭게 발견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당장 감염돼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코로나19처럼 다른 동물을 중간 숙주로 삼는다면 감염병 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미지의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 보존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보존하고 바이러스를 정기적으로 검사해 인간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박쥐 보존 자선단체인 ‘배트 컨서베이션 트러스트(Bat Conservation Trust)’의 리사 월리지 보존책임자는 “야생동물 보호는 감염병 예방뿐 아니라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자연보호 활동가와 과학자의 협력이 공중보건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28일 소개됐다.

참고자료

Nature Communications,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38717-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