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각 2014년 7월 1일 오전 6시. 환경 단체와 개발도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 대책에 고심하던 세계 정상은 오늘 79개국 대기권 상층에 CW-7을 살포합니다. 과학계는 인공 냉각물질인 CW-7 살포에 성공하면 효율적인 기온 관리가 가능해 지구온난화에 혁신적 해결책이 마련된다고 확신합니다.”
영화 ‘설국열차’ 도입부의 한 대목이다. 그 뒤에 벌어지는 상황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 거대한 한파가 지구를 덮치면서 새로운 빙하기가 시작됐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하고 오로지 한 대의 열차만이 얼어붙은 땅을 끊임없이 달린다.
실제로 ‘설국열차’의 도입부는 인류가 인위적으로 지구의 기후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흥행 덕분에 많은 사람은 지구의 기후에 인위적인 영향을 주는 ‘지구공학(Geoengineering)’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한 번의 실수로 인류는 물론 지구 생태계가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하니 당연한 걱정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예상은 조금 달라 보인다. 지구공학이 대중의 우려만큼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과학자들이 최근까지 내놓는 연구 결과다. 이들도 지구가 영원히 파괴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달 20일부터 23일까지 강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분원에서 열린 제17회 아슬라 심포지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모처럼 국내외 학자들과 젊은 과학도들이 참여해 ‘지구공학,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도전적인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구공학은 태양 빛을 반사하거나 지구의 복사열을 방출시키는 방법으로 지구 온난화로 상승하는 기온을 낮추는 기술이다. 성층권에 태양 빛을 반사하는 입자를 뿌리는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과 해양 구름을 더 하얗게 만들어 태양 빛을 반사하는 ‘해양 구름 브라이트닝(MCB)’, 대류권 상층의 권운을 얇게 만드는 ‘권운 제거(CCT)’ 기술이 대표적이다.
지구공학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순환하는 기후에 개입하는 기술인 만큼, 과학계의 걱정과 비판도 적지 않았다. 국지적으로 기온을 낮추는 미봉책으로 성층권에 분포된 오존층에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태양 빛이 지상에 닿지 않아 대류에 이상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유엔환경계획(UNEP)도 올해 2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지구공학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줄이고 엄격한 과학적 검토를 요구한다”며 지구공학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아슬라 심포지엄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지구공학이 지구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과 이에 대한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발표자로는 판 위안차오 중국 칭화심천국제대학원 교수와 제리 치푸트라 노르웨이 NORCE 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차오롱 중국 저장대 교수가 나섰다.
과학자들은 지구공학을 기후모델에 적용한 결과, 부정적 효과만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 위안차오 교수는 식량 안보 측면에서 설명했다. 극단적인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을 시행하는 것보다 지구공학을 함께 접목하는 게 농업 생산량을 오히려 늘린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놨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긴 하지만, 식물에는 광합성에 필요한 ‘먹이’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보다는 지구공학으로 기온을 낮추고 이산화탄소는 적당히 남겨놓는 게 식량 생산에는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구름이 햇빛을 많이 반사하면 일사량이 적어져 식물 광합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시뮬레이션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구공학을 적용해 태양빛을 반사했을 때 직접 일사량은 줄었지만, 간접적인 확산 일사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 작물 재배에 문제가 없었다.
판 교수는 미래에 농업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선 적절한 지구공학 적용과 토지 관리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 교수는 “지구공학으로 나타나는 대부분의 이점은 이산화탄소 효과에서 나온다”며 “연구한 모델에 따르면 우리는 더 높은 농업 생산량을 갖게 될 것이며, 지구공학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보완한다면 더 나은 토지 관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공학이 지구 온난화로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인 해양 산성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해양 산성화는 약알칼리성인 해수에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용해돼 점차 산도가 강해지는 현상으로,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구공학이 전 지구 탄소 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 차오 롱 교수는 지구공학을 통한 기온 하강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함량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태양 일사량을 줄여 기후모델로 분석한 결과, 육지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올랐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줄면서 결과적으로 해양으로 들어가는 이산화탄소도 감소한 것이다. 지구공학을 적용했을 때 해양의 산성도는 0.02pH 정도 개선됐다.
차오 교수는 “지구공학은 토지의 탄소 순환에 영향을 미치고, 지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고려할 때 바다에 흡수되는 양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태양 복사를 조정하는 것은 인간의 탄소 흡수와 대기 중 이산화탄소 함유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년간의 화석 연료를 방출한 만큼, 또 다른 냉각 지구공학 실험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구공학이 해양 산성화를 유도할 것이라는 반대 연구결과도 있었다. 치푸트라 박사후연구원은 “산소는 바닷물이 따뜻할 때 더 부드러워지고 약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구공학 기술을 사용하면 산소의 감소 속도가 느려진다”며 “해양 수소이온농도지수(pH)를 살펴보면 지구공학이 적용된 곳에서 해양 산성화가 더 강력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