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림의 토양이 1년 동안 흡수하는 메탄의 양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약 620만t에 달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기체이다. 승용차 한 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1.92t인 것을 감안하면 산림의 토양이 제거하는 메탄이 승용차 약 324만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맞먹는 셈이다. 강호정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내용이다.
강 교수는 이 연구에서 지구 전체의 산림이 기존 추정치보다 메탄을 40% 정도 더 많이 흡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메탄은 방출 후 100년이 되는 시점에 지구온난화지수(GWP)가 27~30에 달한다.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효과가 27~30배 더 크다는 의미다. 지구 온난화와의 전쟁에서 산림과 토양 같은 육상 생태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연구 결과인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20일부터 23일까지 강릉 분원에서 개최하고 있는 제17회 아슬라 심포지엄에서 강 교수는 “산림, 토양 같은 육상 생태계가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해 지구 온난화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슬라 심포지엄은 신라시대 강릉 지역의 이름인 ‘아슬라’를 본 딴 것으로 해외 유명 학자를 초청해 도전적인 과학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다. 이번 포럼에는 조선비즈가 공식 미디어 후원사로 참여했다.
◇이탄지를 살려라… 탄소 저장 효과 일반 산림의 10배
이번 아슬라 심포지엄의 주제는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다. 과학기술로 기후를 조절해 온난화를 늦추는 기술을 지구공학이라고 부른다. 구름을 더 하얗게 만들거나 더 얇게 만들어서 햇빛을 더 많이 반사시키는 방식이 지구공학의 아이디어다. 비유하자면 양산을 씌워서 지구를 시원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다만 지구공학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기 때문에 아직까지 시뮬레이션으로 타당성을 검토하는 단계다.
강 교수는 지구공학의 대안으로 육상 생태계를 복원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대기 중에 배출된 온실가스다. 온실가스가 대기에 쌓이면서 지구가 갈수록 더워지는 게 지구 온난화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더 이상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미 대기 중에 있는 탄소를 없애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강 교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나 메탄처럼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기체를 없애기 위해 육상 생태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육상 생태계는 토양 내에 1580페타그램(Pg·1Pg=1기가톤) 이상의 유기탄소를 저장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몇몇 특정한 생태계는 효과적인 탄소 흡수원 역할을 한다”며 “이런 특정한 육상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탄지(泥炭地·Peatland)다. 이탄지는 나뭇가지나 잎 같은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채로 퇴적되면서 형성된 늪지대를 말한다. 탄소를 저장하는 효과가 일반적인 산림 토양의 10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내에도 강원도 산림지대나 제주도 오름 등지에 이탄지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전 세계에 분포한 많은 이탄지가 개발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이탄지를 회복하는 것이 지구 온난화를 막는데 중요한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했다가 죽은 뒤에 썩으면서 다시 배출하는데 이탄지는 식물이 썩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토양보다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효과가 큰 것”이라며 “농경지 등으로 바뀐 이탄지를 다시 돌리기 위해 페놀 물질(Phenolics)을 넣거나 이끼를 심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논이나 블루카본(해양 생태계의 탄소 흡수원)을 이용한 전략도 있다. 논은 벼를 기르기 위해 물을 채워놓는데 이런 환경이 메탄이 만들어지는데 도움을 준다. 논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없애기 위해서는 물의 수위를 낮춰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벼의 유전자를 변형해 낮은 수위의 물에서도 잘 자라게 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탄소 흡수력이 뛰어난 블루카본을 늘리기 위한 노력도 있다. 염습지와 맹그로브, 잘피(해초) 같이 탄소를 많이 흡수하는 블루카본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한국은 염습지가 많았는데 대부분 개간을 해서 농경지로 변했다”며 “비식생 갯벌도 식물성 플랑크톤과 외부 유기물이 쌓이면서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갯벌을 블루카본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캔다? 다이아몬드 포집한다
강 교수가 제안한 방법들은 지구에 원래 있던 생태계를 이용해 탄소 흡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위적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려는 시도도 있다. 이른바 탄소제거기술(Carbon Dioxide Removal, CDR)이다. 직접 탄소 포집(Direct Air Capture)이라고도 부른다.
예컨대 스위스 기업인 클라임웍스는 아이슬란드 남부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서 돌로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 자연에서도 암석이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다는데 착안해 대기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암석 코어로 만든 것이다. 자연에서라면 수천 년이 걸릴 과정을 인위적으로 몇 달 만에 할 수 있게 앞당겼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만든 일론 머스크도 CDR에 매료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국제 비영리단체인 엑스프라이즈와 함께 CDR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1억달러(약 1293억원)를 주겠다며 대회를 개최했다. 매년 1000t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조건이다. 최종 우승자는 2025년 4월 22일 발표된다.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사람들을 혹 하게 하는 접근법도 있다. 미국의 보석업체인 ‘이더’는 대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로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있다. 자연에서 채굴한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만드는 다이아몬드다. 다이아몬드가 어차피 순수한 탄소로 이뤄져 있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자연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려면 수백만 년의 시간 동안 엄청난 열과 압력이 필요한데 실험실에서는 이 과정을 몇 주면 할 수 있다. 클라임웍스가 포집한 이산화탄소가 이런 실험실 다이아몬드 제작에 쓰인다.
이외에도 대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단순히 돌로 만들어서 지하에 저장할 수도 있지만, 이산화탄소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클라임웍스는 이산화탄소를 온실에도 공급한다. 작물이 이산화탄소가 적당히 많은 환경에서 더 잘 자란다는 걸 이용한 것이다.
IPCC를 비롯한 국제기구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방식이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는데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중립을 위한 감축량의 15% 정도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이 담당해야 한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방식의 전망이 밝기만 한 건 아니다. 아직 기술적인 수준이 충분하지 못한 건 둘째치고, 비용에 대한 부담도 크다. 클라임웍스가 이산화탄소를 돌로 바꿔주는 비용은 t당 100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교수는 “낮은 농도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흡수재를 개발해야 하는데 만드는 비용이나 에너지가 적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방법인지 의문”이라며 “원래부터 존재했던 자연 생태계를 이용하는 것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도 거부감이 없고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