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샐퍼드대의 니콜라 제인 글로바 연구원과 잉글리쉬 스프링거 스파니엘 품종의 탐지견 프레야. 앞쪽은 멸종 위기 동물인 큰볏도롱뇽이다. 프레야는 후각으로 땅속 도롱뇽을 90% 가까운 성공률로 찾아냈다./영 샐퍼드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프레야(Freya)는 유럽에서 반려견 암컷에 흔히 붙이는 이름이다. 하지만 영국에 사는 잉글리쉬 스프링거 스파니엘 품종의 프레야는 다른 프레야와 다르다. 뛰어난 후각으로 과학자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양서류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스파니엘 프레야는 양말 냄새만 맡고도 아프리카 어린이가 말라리아에 걸렸는지 가려냈다. 암 환자, 코로나 감염자도 찾고 스트레스도 감지했다. 개들이 뛰어난 후각으로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88% 정확도로 땅속 도롱뇽 찾아내

영국 샐퍼드대 환경과학과의 로버트 제흘(Robert Jehle) 교수와 니콜라 제인 글로버(Nicola Jayne Glover) 연구원은 지난 7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탐지견이 후각으로 땅속에 있는 멸종 위기 양서류를 90% 가까운 정확도로 찾아냈다”고 밝혔다.

큰볏도롱뇽은 영국과 유럽 중부와 북부에 사는 양서류로, 개체수가 줄어 특별 보호가 필요한 종이다. 양서류는 물과 육지를 오가며 산다. 과학자들은 큰볏도롱뇽의 물속 생활은 자주 관찰해 알고 있지만, 땅속 동굴이나 바위 틈새에서는 어떻게 사는지 아는 바가 별로 없다. 토목이나 건축 공사를 앞두고 도롱뇽 서식지인지 조사하려고 해도 정보가 부족한 실정이다.

글로버 연구원은 2018년부터 두 살배기 프레야와 땅속에 있는 큰볏도롱뇽을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기다란 파이프 한쪽 끝에 도롱뇽을 두고 반대편에서 프레야가 냄새를 맡도록 했다. 16번의 시험 동안 프레야는 2m 거리에서 14번 도롱뇽을 탐지했다. 87% 성공률이다.

영국 샐퍼드대의 니콜라 제인 글로버 연구원이 잉글리쉬 스프링거 스파니엘 품종의 탐지견 프레야와 멸종 위기 동물인 큰볏도롱뇽을 찾고 있다. 프레야는 후각으로 땅속 도롱뇽을 90% 가까운 성공률로 찾아냈다./영 샐퍼드대

다음에는 모래나 점토로 된 토양에 20㎝ 깊이로 공기가 통하는 파이프를 묻고 그 안에 도롱뇽을 넣었다. 파이프 주변의 토양에도 공기가 통하는 작은 구멍을 냈다. 실제 도롱뇽의 굴을 모방한 것이다. 프레야는 이번에도 88% 탐지 성공률을 보였다. 프레야는 공기 구멍을 낸 점토에서 가장 빠르게 도롱뇽을 탐지했다. 환기 구멍이 없는 경우도 모래 토양보다 점토에서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탐지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땅속에 있는 멸종 위기 동물을 연구하는 데 탐지견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땅속 동물을 탐지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보전 연구에 걸림돌이 됐다. 샐퍼드대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탐지견이 땅속에 숨어있는 멸종위기 양서류를 찾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토양 유형이 후각 탐지의 정확성과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글로버 연구원은 처음에 엔지니어링 기업인 웨섹스 워터에서 프레야와 도롱뇽을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웨섹스 워터는 당시 하수관로 건설 현장에서 도롱뇽이 있는지 사전 조사하고 있었다. 영국과 유럽은 법으로 정부 허가 없이 야행성 양서류의 서식지를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도롱뇽 조사에 탐지견을 처음 활용한 업체였다.

과학자들은 프레야 같은 생태 탐지견이 보편화되면 환경 조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글로버 연구원은 “큰볏도롱뇽은 연못에서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거나 초원으로 피한다”며 “프레야가 큰볏도롱뇽이 있는 곳을 알리면 사람들이 찾아내 공사 구역에서 떨어진 보호 장소로 옮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 감지하는 의료 탐지견의 후각./조선DB

◇사람보다 1만배 뛰어난 후각 활용

개가 땅속 도롱뇽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뛰어난 후각 덕분이다. 개는 품종에 따라 사람보다 후각이 1000~1만배 뛰어나다. 먼저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3억개로, 사람의 500만~600만개를 압도한다. 후각 수용체 단백질은 미로 형태의 얇은 뼈 표면에 붙어 있는데, 표면적도 개가 150~170㎠로 사람(5~10㎠)보다 훨씬 크다. 그만큼 냄새 분자와 후각 수용체가 더 잘 반응한다. 또 뇌 크기는 사람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냄새 처리 영역은 3배나 크다. 야생동물 보호단체는 개의 후각을 이용해 멸종 위기 동물의 배설물을 찾고 있다. 탐지견은 인간 수색팀보다 40배 빨리 목표물을 찾는다고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개의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병에 걸린 사람도 찾고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클레어 게스트(Claire Guest) 박사는 레브라도 품종의 반려견인 데이지가 자신의 가슴에 코를 대고 앞발로 두드리는 것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껴 병원으로 갔다. 게스트 박사는 데이지 덕분에 유방암을 일찍 발견해 목숨을 건졌다. 게스트 박사는 2008년 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을 설립했다.

과학자들은 의료 탐지견으로 다양한 질병을 진단했다. 2015년 이탈리아 연구진은 독일 셰퍼드 두 마리가 전립선암 환자의 생체 시료를 98%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영국 더럼대와 의료 탐지견 재단 연구진은 2018년 탐지견이 아프리카 감비아 어린이들이 신은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 감염자는 70% 정확도로, 비감염자는 90%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당시 스프링거 스파니엘 품종의 프레야도 참여했다.

의료 탐지견은 코로나 환자도 가려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수의대의 신시아 오토 교수 연구진은 2021년 4월 플로스 원에 탐지견이 소변과 타액 시료의 냄새를 맡고 코로나 감염자를 96%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브리스톨 카운티 보안관은 미국 경찰 최초로 코로나 탐지견을 도입했다.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는 개들이 코로나 탐지 훈련에서 90% 정확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영국의 의료 탐지견 프레야는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에 걸린 아프리카 어린이를 가려냈다./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

◇스트레스받은 사람도 구별, 자해 방지

반려견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답게 사람 몸에 생긴 이상과 함께 마음의 병까지 찾아낸다. 지난해 9월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 연구진은 플로스 원에 “개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땀과 날숨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병원에서는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에게 의료 탐지견과 같이 생활하도록 한다. 탐지견은 환자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자해 행동을 하면 주위에 알린다. 이제 환자가 겉으로는 멀쩡해도 스트레스 체취가 나면 탐지견이 즉각 다른 사람에게 알려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시 연구에서 탐지견이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의 체취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화학물질을 감지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호르몬 변화를 유발하고 이를 개들이 감지한다고 추정했다.

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인 클레어 게스트 박사는 “의료 탐지견은 건강 문제로 인해 환자의 체취에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이 감지되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도록 훈련받는다”며 “건강 문제 중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처럼 호르몬 변화에 기인하는 것도 있으므로 당연히 탐지견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 탐지견이 사람의 땀과 날숨의 냄새를 맡고 있다. 개는 94% 정확도로 체취를 맡고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을 가려냈다./Kerry Campbell

참고자료

PLoS ONE(2023),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85084

PLoS ONE(2022),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74143

PLoS ONE(2021),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50158